‘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49)
상태바
‘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49)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4.07 1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단 NMC 폐교 건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없었던 일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산처 직원들이 국가재난사태 극복을 위 한 구조 조정안을 몇 시간 토론을 거쳐 접는 경우는 당시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풍전등화 같던 NMC의 구조 조정안은 일단락되었다.

정 교수는 돌아오면서 말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 콧대 세다는 예산처 직원 네 사람을 앞에 놓고 꼼짝없이 설득해 내세요?”
내가 중요한 학교 일로 주요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빠짐없이 동행하는 정 교수의 단골질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비굴하지 않고 누굴 만나든 당당하게 원하는 것을 다 해낼 수 있느냐고….

그 일로 인해 그때 만난 K 사무관과 J 과장은 그 후에 적극적인 내 지원자가 되어 오히려 내가 학장이 된 후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하고 지낸다. 나중에 K 사무관이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처음 예산처에 오셨을 때 교수님이 학교를 위해 자기부터 사표를 내겠다고 하는 말이 제게는 청량제같이 들려서 감동 먹었거든요. 우리가 국립기관 구조 조정한다고 운만 떼도 누구나 자기 밥그릇 날아갈까 봐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시위부터 하는 것을 보아왔는데, 교수님의 그 말은 제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장님과 저는 교수님을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던 것이고요.”

대학 최초로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 과정 개설

1998년 닥친 IMF 사태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두려움으로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공포 분위기였다. 대기업, 은행, 병원 할 것 없이 줄도산하면서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이들의 눈물겨운 사연으로 가슴 아파하며 금붙이라도 모아 나라를 구하려는 애국심이 온통 나라를 흔들었다. 온 나라가 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중소병원의 도산으로 간호사 취업률 역시 역대 최저치인 43%로 곤두박질쳤다. 교육부에서는 취업을 돕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받아 재정지원을 시작했다. 나는 국내 병원으로는 취업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간호사를 해외로 취업시키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 과정(NCLEX-RN) 프로그램을 우리 대학에 설치한다면 국가적 재난사 태에 기여하고 또 난감한 간호사의 해외 취업의 길을 터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먼저 NCLEX-RN 과정을 개설하는데 필요한 교육비용으로 정부지원금을 신청했다. 교육부 지원금 프로그램과 그 목적이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나는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안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교육부 심사를 통과하여 4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우선 교육 시설을 완비하고 영어강의로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강사진 구성이 중요했다. 나는 지난번 삼성과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스카우트하려고 했던 C 선배를 만나 모교의 NCLEX-RN 과정 책임교수를 맡아 영어강의가 가능한 강사진을 과목별로 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미국 해외 취업을 원하는 간호사들을 모집하는 광고를 간호사신문에 대대적이고 지속적으로 게재하여 전국적으로 알리는데 주력했다.

이 프로그램은 교육부 지원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전 과정이 무료였다. IMF 사태 때였던 만큼, 그리고 대학에서 처음으로 운영하는 미국 취업을 위한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라서 첫 모집에 무려 400명이 지원했다. 신청학생이 많아 반을 나누어 강당과 강의실에서 진행하였다. 이렇게 진행된 NCLEX-RN 과정은 IMF로 인해 절망적인 미취업 간호사들에게 유일한 돌파구가 되어 큰 호응을 얻었고 예상보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교육부에서도 정부지원금을 주는 모든 프로젝트 중에서 우리 대학 프로그램이 가장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교육부로부터 3차에 걸쳐 지원금을 받은 후 정부지원금 정책 자체가 중단되었다. 나는 그 후부터는 간호사들로부터 소정의 등록금을 받고 평생교육원의 공식 교육과정으로 정착시킴에 따라 끊임없이 전국에서 간호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가운데 서울까지 올라와서 강의를 듣기 어려운 지방 간호사들을 위해 전국 대학에 무료로 강의 테이프를 제공해서 지방에서도 강의를 들을 수 있게 국립대학으로서의 책무도 잊지 않았다. 

프로그램의 성공은 학교 수입원으로서도 크게 기여하므로 오랫동안 미뤄왔던 학생들의 요구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학교 출입구를 대폭 리모델링했고 강의실 선풍기 교체와 낡은 강의실 출입문들의 전면적 보수 및 교체, 화장실 개보수, 소수 남학생을 위한 남자 화장실 신설 등 예산 부족으로 매년 미루어왔던 학교의 과제들을 빠짐없이 해결해 나갔다. NCLEX-RN 프로그램을 위해 채용된 인원만 강사, 직원, 미화원 등 13명이었다. 즉 공무원 신분이 아닌 민간인 신분의 직원을 13명 채용해서 운영했으니 이는 간호대학 내의 산업체와 같았다. 우리나라 대학 중 간호사 해외 취업을 위한 유일한 이 프로그램이 IMF 후에 우리 대학의 운명을 좌우하는 구조조정을 막아줄 효자 프로젝트라고는 개설할 당시 에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2003년 복지부 감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NCLEX 과정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국고에 넣지 않고 대학 운영비용으로 자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불법이다. 당장 국고에 수납조치 하지 않으면 감사를 나가겠다.”고. “내가 국립대학의 모든 수입은 국고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대학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제대로 주지 않아 학생 교육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을 학교 운영비로도 쓰지 못하게 하고 국고에 넣으라고 한다면 이 사업을 내가 할 이유가 없다. 이 사업은 교수의 업무도 학장의 직무도 아니다. 단지 학교를 위해 내가 중소기업 사장 역할까지 하며 봉사하고 있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