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산소부채량, 마지막 바퀴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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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산소부채량, 마지막 바퀴의 승부수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22.04.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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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3,000m 여자스피드스케이팅 경주. 금메달을 놓고 네덜란드의 이레너 스하우턴 선수와 이탈리아의 롤로 브리지다 선수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처음부터 브리지다 선수가 줄곧 앞서가다가 마지막 두 개의 랩이 남았을 때부터 스하우턴 선수가 속도를 내면서 경합을 벌이더니 마지막 바퀴에서 경이적인 스피드를 내면서 3분 56초 93이라는 올림픽신기록을 수립하여 금메달을 차지했다. 20년 간 묵었던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우는 순간이었다. 

승부를 갈랐던 그녀의 마지막 랩기록은 30초 86이었다. 이 놀라운 스피드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중요한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 중의 하나가 최대산소부채능력이다. 

‘산소부채’(oxygen debt)라는 개념은 무엇일까? 우리는 운동이 끝난 후에는 휴식할 때보다 한동안 더 많은 산소를 소비한다. 이처럼 ‘산소부채’란 운동 후 휴식수준보다 추가로 더 섭취하는 산소량을 의미한다. 

‘산소부채’는 대체로 천천히 걷는 정도 이상의 강도로 운동한다면 언제나 발생한다. 그렇지만 높은 강도로 운동할수록 더 많은 ‘산소부채’가 발생하게 된다. 즉 어느 수준 이상으로 운동할 때는 그 운동에 필요한 총에너지수요량을 유산소과정에 의해서만 충당할 수 없게 된다. 그로 인해서 운동 중에 산소의 결핍이 발생하게 되는데 인체는 산소가 부족한 만큼 무산소과정에 의존하여 에너지를 생산해야 한다. 

즉 휴식할 때의 수준보다 더 많은 산소를 운동 후에 섭취하는 이유는 운동 중에 발생한 산소결핍이라는 빚을 갚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이다. 마치 은행에서 담보대출로 빚을 많이 내서 집을 사고 난 다음에는 그 빚을 갚기 위해 더 열심히 돈을 벌어서 갚아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운동 후에 산소를 휴식수준 이상으로 섭취하는 이유가 단지 무산소 대사의 결과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즉 운동 후 산소섭취 수준이 안정 상태의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단순히 운동 중 상승된 체온이 미토콘드리아의 산소소비를 자극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발전소이다. 

둘째, 운동이 끝난 후에도 심장활동이나 호흡근육은 얼마간 높은 활동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셋째, 운동 중 아드레날린과 같은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는데 이들 호르몬들이 처리되기 전까지는 미토콘드리아의 추가적인 산소소비를 자극한다. 넷째, 운동 중 발생한 젖산과 같은 대사물질을 처리하는데 추가적인 산소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산소부채’ 대신에 ‘운동후초과산소섭취량’(EPOC)이라는 용어가 더욱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렇지만 최대산소부채량(최대 EPOC)이라는 용어는 개인의 최대무산소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활용되고 있다. 최대산소부채량은 최대젖산축적량과도 관련이 있는데 신체적으로 단련된 사람은 무산소대사의 산물인 젖산이 높은 수준까지 축적되는 것을 이겨내며 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내젖산능력이라고도 한다. 

최대산소부채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주로 트레드밀이나 고정자전거를 이용하여 3~4분 동안 운동강도를 높여나가서 마지막 순간은 최대의 속도로 운동을 하도록 한다. 최대의 EPOC가 발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신체적인 능력이 뛰어날수록 최대산소부채량은 커지게 된다. 

특히 중거리 육상이나 스피드스케이팅과 같은 종목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내는 능력이 이것과 관련이 높다. 

앞서 소개한 네덜란드의 이레너 스하우턴 선수가 마지막 랩에서 기록했던 30초대 기록은 출전선수 중 유일하게 기록한 획기적인 기록이었다. 

스하우턴 선수는 마지막 랩의 심리적 장벽을 깨기 위해 마라톤이나 언덕 달리기 경주에도 여러 번 출전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마지막 0.1초를 다투는 치열한 레이스에서는 심리적인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최대산소부채량은 결승선을 얼마 앞두고 마지막 스퍼트 경쟁에서 운동 후 갚아야 할 빚을 최대한 당겨서 쓸 수 있는 능력이다. 이처럼 심장과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을 이겨내는 능력은 생리적 요인뿐만 아니라 정신적 요인도 승리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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