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대를 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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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대를 불며
  • 김용현 법학박사, 시인
  • 승인 2022.04.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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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분 악기가 뭔가요”

길가 바위에 앉아 젓대를 불고 있는데 선녀 같은 여인이 서서 듣다가 곡이 끝나자 묻는다.

“대금(젓대)인데요”

“아, 참 좋네요”

신라의 삼보(만파식적萬波息笛, 진평왕의 옥대, 황룡사 구층탑) 중의 하나로 신문왕 시절 동해에 한 섬이 밤에는 하나였다가 낮에는 둘로 갈라지고 밤에 다시 하나가 되는 괴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그 섬 위에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갈라지기를 섬과 같이하므로 신관에게 물으니 “동해의 용이 되겠다던 문무대왕의 영혼이 저런다고 하면서 대나무가 하나가 되었을 때 베어다가 악기를 만들면 나라에 상서로운 일들이 있을 것”이라 하여 만든 악기가 대금이다. 이 대금을 불면 창궐하던 전염병이 낫고 침입한 적군이 물러가는 등 극히 영험하므로 국보로 삼았다는 전설의 국악기이다. 

어려웠던 시절 고달프고 처연한 마음을 달래려고 불기 시작한 젓대. ‘청성곡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이나 ‘한오백년’을 경치 좋은 곳이면 어디서건 불곤 한다. 대나무에서 나오는 소리와 청음만으로도 청아한, 기쁨의 소리도 아닌 것이 슬픔의 소리도 아니면서 영혼의 깊은 속으로 파고드는 이 전율. 이 악기는 옆으로 부는 악기라 하여 젓대라 하는데 한자로는 ‘大笒(대금)’이라 쓴다.

오늘도 텃밭 일을 마친 다음 걷기운동으로 비단가람(금강) 상류를 향해 차량이 뜸한 고당리를 지나 양저리를 향해 걷다가 잠시 쉬며 청성곡을 한 곡 아뢴 것이다.

걷기운동은 걷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운동의 한 종류이다. 현대의 발달된 물질문명은 절대국가의 황제나 봉건왕조의 임금님 수라상보다 더 영양가 있고 풍성해서 생활의 에너지를 얻기 위한 영양을 습득하는 개념 정도가 아니라 과다섭취로 오히려 살을 빼는 것이 더 중요해 졌다. 

이 걷기운동은 치세의 달인 조조가 무신 관우와 친하기 위해 선물한 적토마처럼 빨리 달리거나 마라톤 연습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지속적으로 달리는 것도 아니고 세계 4대 해전에 빛나는 우리의 성웅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처럼 많은 정보와 면밀한 작전 계획에다 당시에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거북선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대 그리스 소요학파(페리파토스 학파)처럼 여유를 가지고 주위의 풍광을 감상하며 한유하게 걷는 것이리니 이로써 정신건강에 크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덤으로 체력까지 증진되는 것이다. 

또 이 걷기를 어느 관점에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따라 크고 작은 이익이 있을 것이고 더구나 한유하게 걸으면서 자연을 감상하며 대금을 불거나 시 한 구절이라도 건지면 그보다 더 큰 수확은 없으리…

이 대금은 불기도 어렵지만 관리도 잘해야 하는바 연주자들은 “10년을 불었어도 ‘청’ 한 번 제대로 붙이기가 힘들다”고들 한다. 이 ‘청’은 오월 단오 전후 닷새 내에 강이나 호수 등 물가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큰 갈대의 내피를 채취해 밥을 하면서 그 위에 올려 쪄 말린 것인데 젓대의 취공과 제1공 사이에 뚫려 있는 이른바 ‘청공’에 잘 펴서 붙임으로써 소리를 더 맑고 더욱더 청아하게 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대금은 속이 꽉 찬 쌍골죽을 세로로 길이만큼 자른 다음 일정한 너비로 구멍을 뚫어 숨을 불어넣는 취공과 음계를 나타내는 여섯 구멍(음공)을 내(뚫)고 여기에 칠성공을 파서 팔음(八音)이 나게 한 뒤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기찬 ‘참 숨’으로 부는 악기인 바 결국 대나무에 구멍만 뚫은 자연 그대로의 악기라 할 것이다. 이런 자연의 소리에다 떨리는 청소리를 보태면 처연한 달밤 청아한 젓대 소리는 애간장을 끓게 하여 가히 ‘신(神)의 소리’라 할 것이라. 그렇게 오랜 세월 대금을 불었어도 ‘청’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는 인간의 부족함과 나약함이란 우리로 하여금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언제나 조심하고 조심하라는 선조들의 가르침이자 지혜라 할 것이다.

이런 연유 등으로 부사리 황소처럼 깨닫기가 어렵다는 참다운 진리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푸른 산과 아름다운 강이 잘 어우러진 여기를 찾았고 마당에다 ‘심우정尋牛亭’이라는 전통정자를 지어 각 기둥에는 명구나 시편 등을 새겨 놓았으며 강 위에 날거나 서 있는 학들을 보며 대금을 불거나 찾아오는 벗들과 한담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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