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블로그] 아, 어찌하랴, 한 맺힌 ‘구진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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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블로그] 아, 어찌하랴, 한 맺힌 ‘구진벼루’
  • 김동진 기자
  • 승인 2022.05.26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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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신라의 전쟁터였던 군서면 월전리 구진벼루 지역. 백제 26대 왕 ‘성왕’의 최후가 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와 신라의 전쟁터였던 군서면 월전리 구진벼루 지역. 백제 26대 왕 ‘성왕’의 최후가 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 어찌하랴. 세상에 이런 불행이 불운이 있나. 백제 중흥의 꿈과 큰 뜻을 품었지만 그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꺾여 버린 비운의 백제 26대 성왕. 

성왕은 백제 후기의 역사를 장식한 왕으로 뛰어난 지혜와 식견으로 일을 잘 결단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도읍을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고 ‘남부여’라 나라 이름을 고치는 특단의 조치를 하며 백제의 부여 시대를 열었던 장본인이다. 

옥천에 오면서 자주 접하는 역사적 인물 백제 성왕. 옥천에 오기 전에는 평소에 특별히 떠오르거나 생각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백제의 중흥을 이끌었던 백제왕 정도로 역사책을 읽고 알았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은 백제와 크게 관련이 없어 부산에서 이름난 역사적 인물을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래부사 송상현과 정발 장군 등 임진왜란 관련 역사를 자주 접했다.

옥천군 군서면 월전리마을 구진벼루 지역의 서하천 제방에 ‘백국이십육대성왕유적비’라고 새긴 비석을 세우고 뒷면에 백제 성왕 전사기라는 내용의 글이 기록되어 있다.

구진벼루 지역은 서기 557년 7월, 백제와 신라가 국운을 건 관산성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554년 7월 성왕은 아들 여창을 격려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매복 중인 신라군에 의해 사로잡혀 참수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백제 중흥이란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는 그의 원혼이 잠든 유서 깊은 역사적 현장으로만 남아있다.

성왕의 죽음에 대한 글을 읽으면 늘 가슴이 무겁고 눈물이 고인다. 백제의 후손은 아니지만 아마도 한 시대를 살다간 영웅의 최후가 가엽게도 운없이 허무하게 죽임을 당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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