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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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1)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3.04.2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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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근왕 길에 오른 중봉의병    

조헌이 의병을 이끌고 드디어 근왕(勤王)을 가기 위한 북상 길에 올랐다. 청주성을 회복한 조헌 의병장이 전승업(全承業)과 곽현(郭賢), 아들 완도(完堵)를 시켜 임금께 보고하는 장계와 상소를 올려 보내고 자신은 의병을 이끌고 근왕을 나선 것이다. 순찰사 윤선각(尹先覺, 차후 尹國馨으로 개명)은 마음이 불안했다. 그에게는 떳떳하지 못한 비행들이 있었다. 조헌이 그것을 임금께 주달 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순찰사 윤선각 곁에는 안세헌(安世獻)이란 간신배가 있었다. 안세헌은 일찍이 조헌이 공주에서 의병을 모을 때에 순찰사 윤선각을 이간질해서 성공 직전에 천여 명이나 모인 의병들을 모두 흩어지게 만든 간교한 자였다. 그가 순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모(全某)가 가져가는 조헌의 상소에는 영공(令公, 윤선각을 일컬음)을 비방한 글이 많다고 들리니, 이 상소가 만약 행재소에 도달하게 되면 공은 반드시 무거운 견책을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순찰사는 심복부하를 시켜 수군을 단속한다는 핑계로 소(疏)를 가져가는 일행을 막고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였다. 전승업이 그 까닭을 짐작하고 상소를 보여주며 헐뜯는 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배 타는 것을 허락했다. 이로 인하여 기일이 지체되어 늦게 당진에 도달하게 되었고, 일행이 의주로 갈 배를 수소문하는데 또 시일이 걸렸다. 

이때에 의병을 이끌고 북상을 시작한 조헌은 온양에 도착했다. 조헌은 잠시 온양에서 군량을 모으는 일에 매달렸다. 최소한 한 달은 먹을 수 있는 군량이 필요했다. 장차 거쳐 가야 할 고을들은 왜적이 점령하고 있어서 군량의 조달이 불확실했다. 다행히 온양 일대는 왜적의 세력에서 벗어나 있어 군량을 모으는 일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순찰사 윤선각이 급히 온양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의 막하에 장덕익(張德益)이란 자가 있었다. 그를 보내서 조헌을 설득하여 근왕 가는 일을 중지시키려는 것이었다. 조헌의 근왕을 막을 마땅한 구실이 없었다. 윤선각은 장덕익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렇게 전했다.

“나는 처음에는 공(公)과 사이가 좋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인배들이 나와 공(公)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그리하여 나도 역시 깨닫고 이제는 뉘우치고 있다. 또한 서원(西原, 청주) 전투에서 이미 공의 충용함을 알았으니 이제 공과 더불어 생사를 함께할 것을 맹세하노니 원컨대 고인(古人 옛 친구, 중봉을 말함)은 이 조그만 혐의를 풀고 큰 공을 이룰 것을 기약하자. 이제 듣자니 금산(錦山)의 왜적이 스스로 뽐내어 전투에서 패한 자들을 불러다 죄를 들추어 꾸짖은 뒤에 다시 더욱 창궐(猖獗)하여 장차 침략이 있을 것이라 한다.”

충청・전라의 형세가 이러하면 국가는 다시 중흥할 수 있는 희망이 없을 것이니 어찌 안심하고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겠는가? 함께 금산의 왜적을 치는 것만 못할 것이니 뒤에 힘을 합쳐 상감의 환난을 구하는 것이 늦지 않을 것이다.“ 

순찰사 윤선각의 뜻에 조헌은 일단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기병의 목적이 근왕(勤王)에 있었고, 부대가 온양까지 올라온 지금 다시 군사를 돌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헌 의병장은 휘하의 부장(副將)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게 하였다. 부장들은 한결같이 의병장에게 간(諫)하기를 “두 분 장군께서 서로 화합하여야 능히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순찰사와 틈이 벌어져 있으면 일이 장차 불리하게 될 것입니다. 도한 국가의 구역이 모두 적에게 점거되고 단지 충청・전라도만 그래도 온전한데, 이것마저 잃게 되면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금산과 무주 등지의 왜적을 섬멸한 뒤에 병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올바른 계책일 것입니다”라고 순찰사의 요청대로 금산의 왜적을 먼저 섬멸할 것을 건의했다. 조헌이 쉽게 결심하지 못하자 병사들까지 나서서 번갈아 간(諫) 하니 조헌 의병장은 순찰사의 말대로 금산의 왜적을 먼저 섬멸한 후에 근왕을 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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