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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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12)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3.04.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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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의리를 배반한 순찰사 윤선각    

조헌이 근왕을 가던 군사를 되돌려서 다시 공주로 내려왔다. 순찰사의 약속을 믿고 회군한 것이다. 공주에 도착한 조헌은 순찰사 윤선각과 금산의 왜적을 토벌할 계획을 논의하려고 했다. 순찰사를 만난 조헌이 이렇게 말했다.

“공(公)이 사람을 보내어 함께 힘을 합쳐 금산의 적을 토벌하고자 했으니 우선 관군은 관군대로 진군할 준비를 하고 의병은 현재 그 수가 적으니 더 모집할 수 있도록 하고 군량과 병기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금산의 왜적을 공격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것을 상의했다. 그러나 윤선각은 관군이 불리하다는 핑계로 이를 거절하고는 약속을 깨버렸다. 애초부터 그는 조헌의 근왕을 저지할 목적이었을 뿐 금산의 왜적을 공격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의병으로 나아간 가족들을 핍박하고 겨울준비를 위해 귀가시킨 의병들을 잡아 가두기까지 했다. 의병들이 동요하고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선조수정실록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조헌이 다시 군사를 모집하여 북쪽으로 항하여 온양(溫陽0에 이르자 윤국형(尹國馨)이 막하의 장덕익(張德益)을 시켜 조헌을 설득하기를 ‘서원(西原)의 전투에서 이미 공의 충용을 알았으니 이제는 공과 사생(死生)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한다. 그런데 금산(錦山)의 적이 고 초토(高招討)가 전투에서 패한 뒤로 더욱 창궐하여 앞으로 호서(湖西)・호남(湖南)을 침범할 형세가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국가에서는 다시 중흥할 희망이 없어질 것이며 공을 따르는 사졸들도 자신의 집을 생각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안심하고 북쪽으로 갈 수 있겠는가? 차라리 작전을 변경하여 금산의 적을 토벌한 뒤에 힘을 합해 근왕(勤王)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했다. 

이에 조헌의 장사들도 조헌을 설득하기를 ‘순찰사와 조화를 이루어 먼저 금산의 적을 토벌하는 계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므로 조헌이 공주(公州)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순찰사의 의도는 단지 그들이 북쪽으로 가는 것을 막는 데 있었을 뿐이었고 또 그의 군대를 저지시킴으로써 사졸심(士卒心)이 점차 분산될 것을 계산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헌의 휘하에는 단지 7백 의사(義士)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당초부터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세하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떠나지 않고 마침내 영규(靈圭)와 함께 금산(錦山)으로 달려갔다. 

실록은 순찰사 윤선각의 행태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충청도를 다스리는 관찰사요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수호해야 할 순찰사의 위치에 있는 관리가 전쟁 속에서도 이처럼 자신의 보신과 영달에만 눈이 멀어 있었으니 당시에 이러한 자들이 어찌 윤선각 한 사람 뿐이었겠는가? 

이제 조헌의 휘하에는 7백 명의 의사만이 남았다. 관군의 핍박 속에서도 조헌을 따르는 칠백 명의 의병은 함께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였다. 그들은 일시적 감정이나 우연히 분위기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조헌 선생의 나라를 걱정하는 지극한 충성심과 부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 감동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조수정실록에 이를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조헌이 군사를 일으킨 지 몇 개월 동안 군사들에게 벌을 가하지 않았지만, 군사들은 모두 명령을 받들어 각자가 힘써 전투하였으며 이르는 곳마다 엄숙하고 정돈이 되어 문란하지 않았다. 당초에 그가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원근에서 따르고 모였는데 관가에 의해 가족이 구금되어도 오히려 조헌을 사모하여 차마 떠나지 못했다.” 

의병에게 매질을 하지 않아도 엄정한 군기를 세웠고 의병들은 관군에 의해 가족이 구금되는 모진 핍박에도 오히려 조헌을 사모하여 차마 그를 떠나지 못했다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시대를 떠나서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관들이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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