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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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산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3.06.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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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상복을 입고 거리로 나온 이유

“협박으로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자를 보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1시 옥천읍 한 약국 앞. 이곳에서는 지난 2월 관내 한 노인요양병원에서 간호실습생으로 일하던 L씨가 이 병원 행정원장의 지속적인 협박을 이기지 못해 끝내 유명을 달리한 사건에 대해 그의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더 이상 이러한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뜻을 같이하고 원인 제공자로 알려진 병원 행정원장에 대한 사법적 처벌을 요구하는 의미있는 시위가 열렸다. 

이번 시위는 사람 목숨과 관련된 집회라는 점에서 옥천군 역사 이래 최초의 집회로 다른 집회와는 성격을 달리했다. 

사건 당시 L씨는 임금체불로 대부분의 의료진이 퇴사를 한 상태에서 혼자서 30여 명에 이르는 환자들을 케어하고 있었다. 그것도 정식 의료진도 아닌 간호실습생 신분으로. 그러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케어가 힘들다는 한계에 부딪힌 L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퇴사자에게 병원 실태를 알렸다. 

하지만 이미 케어능력을 상실한 병원은 오히려 L씨를 상대로 협박을 이어갔다. “실습생이 외부로 보낸 사진으로 인해 언론에 보도가 돼 병원이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며 L씨를 고소하겠다고 압박을 했다. 

난생 처음 고소라는 말을 들은 L씨는 너무도 무서운 생각에 식음을 전폐함은 물론 밤잠을 못 이루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에만 매달렸다. 

그리고는 행정원장에게 “제발 고소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수없이 눈물로 호소를 했다. 하지만 그러한 L씨의 부탁은 행정원장의 귀에는 스치는 바람 소리만도 못했다. 

그러다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다고 판단한 L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당시 22개월 된 아들과 언제까지나 자신과 함께해 줄 것으로만 생각했던 남편을 두고 급기야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L씨의 죽음이 L씨 혼자만의 문제일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타인의 협박으로 생을 달리했는데도 혼자만의 죽음이라고 치부하고 말 것인가. 자기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어도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건 개인 간 발생한 사건인 만큼 자신들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설상가상 일부 언론에서는 이러한 행정원장의 변명이 실린 호소문을 실어 광고 수익을 올리는 씁쓸함도 발생했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가정불화도 아니고 온전히 타인의 협박에 의해 목숨을 끊었다면 이는 분명 진지하게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그래서 지자체가 있고 경찰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또 그러한 문제에 대해 더 진지하게고 고민하고 살피라고 국민들이 낸 혈세로 월급을 주는 것 아니겠는가. 

더욱이 당시 사건의 전말을 보도한 옥천향수신문에서 해당 사건은 단순한 자살 건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협박으로 인한 사건이니만큼 진지하게도 들여다봐 달라는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끝내 침묵했다. 그래 놓고도 집회 때 몇 명이나 모일 것 같으냐고 물어본다면 이건 또 무슨 얘긴가. 

망인이 유명을 달리한지 석 달이 넘었다. 그러나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죽은 자만 억울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참다못한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분노하고 나선 것이다. 더 이상 지자체나 경찰은 믿을 곳이 못 되니 이제는 옥천군민, 아니 대한민국 국민들이 좀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자고. 

목숨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으랴. 모두가 살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사업을 하며 출세를 하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러한 목숨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특정인의 탐욕에 의해 목숨을 빼앗겨 버린다면 이는 분명 공분할 문제다. 세상 어느 누구도 정당한 이유 없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그게 대통령이든 공무원이든 또는 일반인이든. 

더욱이 생을 달리한 유가족에 대해 지금까지도 보상은커녕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은 병원의 행태에서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옥천이라는 지역사회가 이대로 굴러가도 되는 건지, 이게 진정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살아 움직이는 사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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