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띠 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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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띠 장화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3.06.1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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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 현관에는 고무장화 두 켤레가 놓여 있다. 늠름한 남색 민무늬 장화와 흰 꽃, 분홍 꽃무늬가 어우러진 새색시 같은 장화다. 꽃무늬 장화는 화사하고 젊은 여인처럼 싱그러워 꽃띠 장화라고 불러준다. 이들은 언제라도 주인을 모시고 일터로 나갈 채비를 갖추어 나란히 서 있다.

꽃띠 장화는 나에게 충성을 다한다. 주인의 발에 흙과 오물이 묻지 않도록 제 몸으로 막는다. 지렁이를 보고 놀란 발을 감싸며 다독거린다. 잡초가 우거진 풀밭에서는 혹시라도 출현할 뱀이 있을까 긴장하며 미리 살핀다. 궂은일 다 하면서도 불평이나 지친 기색 없이 늘 명랑하다. 모습은 아리따운 여인 같으나 제 역할은 사내대장부 못지않다. 어느 사이에 나의 분신과 같은 존재가 된 꽃띠 장화! 텃밭에서 일할 때뿐만 아니라 수돗가에서 채소를 씻을 때, 이불 빨래를 할 때도 의례 동행한다. 숲속 길에서도 등산화보다 꽃띠 장화와 함께 거니는 것이 편하고 미덥다. 내가 장화를 처음 신어 본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버지가 검정 고무장화를 사 주셨다. 그 장화를 방안에서 신었다 벗었다 하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어서 눈이 오기를 기다렸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집 근처의 분교에 다니다가 3학년이 되면서 4km쯤 떨어진 본교로 등하교하게 되었다. 비가 오면 질퍽거리고 눈이 오면 양말이 젖어 꽁꽁 언 발로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 주신 장화 덕분에 내 발이 호강했다. 아이들이 장화를 신은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불현듯, 무뚝뚝하나 속정 깊으셨던 아버지가 가슴 저리도록 그립다.

신혼 시절에 남편이 사 준 흰색 고무장화는 사랑의 척도였다. 수원시 변두리로 부임한 곳 진입로와 운동장이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었다. 흙이 얼마나 차진지 구두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은 ʻ장화를 꼭 사야지.ʼ라고 했다가 맑은 날이 되면 잊어버리곤 했다. 어느 날, 밤새 내린 비로 출근길이 막막했다. 아침 식사 준비를 하면서 남편에게 장화를 사달라고 부탁했는데ʻ이 시각에 신발가게 문을 열기나 했나?ʼʼ라며 시큰둥했다. 헌화가*를 불러대듯 하던 남자, 결혼한 지 몇 달이나 되었다고 태도가 달라지다니…. 서운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내 얼굴을 본 남편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얼마 후, 그의 손에 들린 흰색 고무장화 한 켤레가 덩실덩실 춤추며 들어왔다. 문을 채 열지 않은 신발가게 문을 두드려 사 왔다고 했다.

그 후 한동안은 장화를 신은 기억이 없다. 웬만한 길은 포장되었고 교통편도 좋아졌다. 그리고 자가용 시대가 열렸다. 고무장화는 농어촌이나 공사장에서 궂은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물건이고 나와는 상관없을 줄 알았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하면서 장화가 필수품이 되었다. 읍내시장에서 더러움을 덜 타는 남색 장화를 샀다. 남편 장화와 크기가 다를 뿐 같은 색깔, 같은 모양이었다. 그 장화와 7년을 함께 지냈는데 왼쪽 뒤꿈치에 병이 나고 말았다. 발에 꼭 맞는 장화를 샀더니 신고 벗는 과정에서 시달리다가 견디지 못하고 접착 부분이 터진 것이다. 옛 시절 어머니처럼 실로 꿰매어 신으려다가 꽃띠 장화를 새 식구로 맞이했다. 꽃띠 장화에 발을 디밀면 기분이 좋다. 곱고 청순한 꽃띠 장화가 흙투성이가 될세라 진 곳 마른 곳 가려서 다닌다. 먼저 신었던 남색 장화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궂은일 다 시켰던 일과 대조적이다. 어느 것이든 예쁘고 볼 일인가. 

날이 갈수록 꽃띠 장화는 꽃다운 자태가 점점 퇴색되어 간다.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의 해맑은 꽃띠 모습이 아니다. 철철이 나와 함께 일 한 기간이 여러 해, 나 역시 꽃띠 장화처럼 낡아지고 있음은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이리라.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린 줄기를 양손에 치켜들고 활짝 웃으며 사진 찍은 십 년 전 내 모습만 해도 꽃띠 같았는데….

꽃띠 장화를 깨끗이 닦아 남편의 지친 장화 옆에 나란히 놓는다. 꽃띠 장화가 빛바래도 정감 있다. 남편의 처진 어깨를 다독거리는 지혜로운 아내 같다. 

*(수로 부인이 벼랑 위에 핀 철쭉꽃을 탐내자, 소를 몰고 가던 어떤 노인이 그 꽃을 꺾어 바치며 불렀다는 사구체 향가四句體鄕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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