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을 들 힘조차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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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들 힘조차 없더라도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명예 교수
  • 승인 2023.06.22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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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환자가 수술받고 항암치료를 받을 때 나타나는 가장 큰 암 관련 부작용은 극심한 피로감, 그리고 구역질과 구토와 같은 문제로 인한 식욕상실이다. 이 두 가지 부작용은 환자로 하여금 더욱 움직이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하고, 침상에 누워있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다. 

이런 고통 속에 있는 환자에게 침상에서라도 움직이고, 침상 주변을 걷도록 권유할 때,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숟가락 들 힘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운동하라는 말이냐는 것이다. 이럴 때 그 힘든 상태가 아파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라는 것을 알기에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그렇지만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환자가 무슨 대단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움직임, 침상에서 처음에는 발가락과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정도의 움직임이라도 시작하는 것이 향우 예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말하자면 이러한 암을 이겨내려는 환자의 의지와 운동에 대한 태도가 암세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첫걸음이 된다. 

흔히 암 환자가 운동해야 하는 이유를 수술과 항암 전후에 체력 수준을 올려서 치료에 따른 부작용을 잘 이겨내고, 의학적 처치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말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즉 운동은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환자 몸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미세암세포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양의 미세환경을 항암적인 환경으로 바꾸는 것인데, 여기에는 환자 자신의 노력과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상세포가 유전자변이에 의해 초기암이 되고, 이것이 줄기암으로 전환될 수 있는데, 줄기암은 급격한 암세포의 분열로 인해 혈관이 미처 형성되지 않은 저산소구역에 주로 존재하게 된다.

사실 나이를 먹으면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노화현상으로 말초 모세혈관의 밀도가 줄어들게 된다. 일반적으로 운동습관이 없는 사람이 60대를 맞이하게 되면 모세혈관은 40%나 감소한다. 또 혈관을 확장시키는 산화질소를 생성하는 혈관내피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도 혈관노화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는 조직세포에서 산소공급이 현저히 줄어드는 상태를 의미하며, 그로 인해 미세줄기암세포가 증식하는 좋은 조건이 될 수 있다.

특히 암세포는 증식하면서 자신이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혈관신생을 촉진하는 물질을 생성시킨다. 그러나 암세포에 의해 촉진된 혈관신생은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비정상적이어서 미세줄기암세포가 좋아하는 저산소상태를 초래한다. 또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 면역세포는 이러한 불안정한 혈관구조로 인해서 암세포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처럼 면역세포가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형태의 암을 “차가운 종양”이라고 한다. 차가운 종양은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가 암조직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지 못하므로 면역치료 등에 잘 반응하지 않고, 예후도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동은 혈관생성을 정상화시켜서 암조직으로의 관류를 증가시키고 산소화를 증가시킴으로써 미세암줄기세포가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T세포나 NK세포와 같은 면역세포가 암세포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러므로 수술이나 항암치료와 같은 표준치료를 받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암의 재발위험을 낮추는데 매우 중요하다. 암환자에 대한 주요 치료방법으로 고압산소요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암조직으로의 산소공급을 늘려서 암의 성장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또 고주파온열치료는 암조직의 온도를 높여서 암세포분열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다. 

운동요법은 원리적으로 이러한 요법들에 잘 부합된다. 항암화학치료나 고압산소요법, 그리고 고주파온열치료와 운동요법을 병행함으로써 더 큰 치유효과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암환자에게 있어서도 치료과정 중 피곤하면 무조건 휴식을 해야 한다는 오래된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숟가락 들 힘조차 없다면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운동, 다시 말해서 움직이려는 의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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