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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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05)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6.29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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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 당시 뉴욕대학교를 선택하지 않고 시애틀 워싱턴대학교로 갔었다면 아마 네가 뉴욕에서 지금 사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지 않겠니? 그러나 네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살아가면서 반드시 네 마음에 이 4가지 질문을 담아두고 가끔은 자문자답해 보기 바란다.남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 북돋아 주고 감사하고 있는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틀렸다고 단정 짓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함께 가려 하는가? 나보다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나누는가? 나보다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온정의 눈길로 인도하고 있는가?사람은 상황이 좋아서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고 인내하며 겸손하게 사는 사람은 어떤 인생의 길에서든 든든하고 행복할 수 있다.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행운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인간의 성공과 행복은 남과의 관계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의 4가지 질문으로 자신을 겸손하고 진실하게 정직, 성실한 관계로 남을 대하면 너의 성공과 행복은 저절로 찾아들 것이다.

‘God has a plan for me’

너도 하느님께 기도할 때 늘 감사하면서 이 말을 가슴에 떠올리며 최선을 다하거라. 하느님은 꼭 너를 위한 멋진 계획을 하고 계실 거다. 

사랑하는 경훈아.

작가 황경신의 ‘콩나물이 자라는 이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너도 기억하지? 초등학교 창가에서 햇살을 듬뿍 받으며 싹을 틔운 콩들은 무성한 콩나물로 성장했다. 친구들이 번갈아 가며 물을 주는데 그 물들은 대부분 아래로 그냥 빠져나가 버린다. 선생님에게 물었다. “물을 먹지도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쑥쑥 자라나요?” 선생님께서 “너는 오늘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을 내일 다 기억할 수 있니? 아마 반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할거야. 그다음 날에는 반의반, 또 그다음 날에는 반의반밖에 생각나지 않을 거고. 언젠가는 다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배우기 전의 너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거야. 콩나물도 그렇단다. 네가 너도 모르게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콩나물도 그렇게 자라는 거야.

나에게 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던 부모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세상에서 스승 노릇을 해 준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먹는 법, 입는 법, 걷는 법, 말하는 법, 글씨 쓰는 법, 책을 읽는 법, 노래 하는 법, 마음을 다스리는 법,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웠다. 부모님과 스승들과 많은 분들이 베푼 한없는 사랑을 나는 간직하지도 못한 채 콩나물의 물처럼 흘려보냈다. 하지만 나는 콩나물 처럼 자라났다. 나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했을까요?그렇지? 우리는 흘려보낸 물만큼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은덕으 로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지. 지금 네가 그분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고마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톰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Stowe, H. B.)’는 “어려움이 닥치고 모든 일이 어긋난다고 느낄 때, 이제는 1분도 더 견딜 수 없다고 생각이 들 때,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라. 바로 그때, 바로 그곳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우리에게 충고하지 않았니? 네가 살아갈 긴 네 인생 여정에서 네 삶의 주인공은 너뿐임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네가 어릴 적 엄마가 늘 말했었지? 엄마는 우리 경훈이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사랑하는 아들 
석원아!

네가 태어나던 날, 나도 너와 함께 엄마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아빠도 아빠라는 첫 이름표를 다는 생애 첫 환희를 느꼈다. 할 머니는 솜 포대기로 너를 감싸 안으시고는 “영락없이 에미를 닮았구나.” 하셨단다. 이 세상에 내 분신이 하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생기다니! 엄마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함에 그저 감사함뿐이었다. 엄마의 역할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었지. 너를 만나고 4주 후에 엄마는 학교에 출근해야 했고, 먹이던 젖이 불어서 낮에는 직장에서 겉옷까지 젖이 젖어 쩔쩔매곤 했단다. 네가 밤낮을 바꿔 12시가 지나도록 자지 않고 울어 대어, 고등학생이었던 넷째 삼촌이 밤잠을 못 자 얼마나 피곤했던지, 닭을 거꾸로 그려서 벽에 붙이면 아이가 울지 않는다는 말을 학교 친구에게 들었다며 네 머리맡에 거꾸로 된 닭 그림을 붙여놓았지. 그 덕인지 백일동안 밤낮을 바꿔 울던 네가 백일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잘 자더구나. 너는 친가에서도 외가에서도 축복받는 손자로 귀여움을 독차지했지. 튼튼하고 영리하고 활달하게 잘 자라주는 너의 존재가 엄마 아빠의 꿈이자 희망이었단다. 네가 돌이 갓 지나면서 엄마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단다. 돌이 지나 걷기 시작하면서 놀기를 좋아하는 너를 이웃 아줌마들도 무척이나 귀여워했지. 옆집 사는 대학원생은 네가 어찌나 똑똑한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꼬마 이 박사’라고 불렀단다.
두 돌 갓 지난 너는 밖에 나가면 형들과 어울려 맨 꽁무니에 붙어 뒤뚱거리며 따라 뛰어놀다가 기저귀가 젖으면 기저귀를 빼버리고, 오줌을 싸 신발이 젖으면 젖은 신발 한 짝을 벗어던진 채 한쪽 신발만 신고도 노는 걸 좋아했지. 엄마는 기저귀는 놀이터에서 줍고, 현관문 앞에서는 신발 한 짝 줍고, 그사이 너는 또 어디로 갔는지 찾아 헤매는 게 일과였단다. 그렇게 밖에서 뛰어놀다가도 집에만 들어오면 너는 쌓여 있는 책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불러도 모르고 그 책들을 다 읽고 난 후 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만큼 책을 좋아하는 너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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