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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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3.08.0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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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산딸기는 어김없이 익어간다. 해마다 산딸기가 익어가는 계절이면 언니에게 아름답던 강촌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뭐가 그렇게 바쁜지 애를 태운다. 드디어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한 오늘 큰맘 먹고 세 자매가 길을 나섰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강촌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열여섯이나 열일곱쯤이었던 것 같다. 강촌에 살고 싶다는 노래가 한참 유행하던 때였다. 강촌에 놀러 가자는 한 친구의 제안에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러자고 했다. 남자의 손만 잡아도 큰일 나는 줄 알던 시절, 약속 장소로 나가 보니 남자 몇 명과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소풍을 제외하고는 생전 처음 가보는 나들이에 신이 나기도 했지만 내심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물 밑으로 때 묻지 않은 자갈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맑은 물을 한바가지 떠서 마시고 싶다. 여울에는 은빛물결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길손을 싣고 노를 젓는 뱃사공의 모습이 그림 같다. 물 가운데 작은 섬처럼 떠있는 바위까지도 석양빛으로 곱게 물들었다. 강둑으로는 빨간 산딸기들이 수십 미터나 울타리가 되어 이어졌다. 

마치 강물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계선인 듯하다. 수없이 흐른 세월에 갈고 닦인 짱돌들이 쫙 깔려있는 강변에 앉아, 두근거리는 속마음을 감추고 내숭을 떨며 해지는 줄 모르고 깔깔거렸다. 그날의 아름답던 사춘기의 추억이 사십년 세월이 흘렀어도 마음 밭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강촌,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강촌에 살고 싶다는 노래까지 나왔을까? 그런데 그 강촌은 간데없고 예전에 없던 다리들이 강물을 가로질러 사방으로 쭉쭉 뻗어있다. 도로 양쪽으로는 식당과 숙박시설이 꽉 들어차 어디가 어딘지 가능할 수가 없다. 

물어물어 강을 찾아가기는 했다. 그 맑던 물은 뿌옇게 오염되어 흐르고, 짱돌 깔려있던 강변도 보이지 않는다. 잘못 찾아왔나 싶어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강가로 내려가 여기 저기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조각배를 발견했다. 찾았다는 반가움에 ‘저기다! 그래, 맞아. 여기가 맞기는 맞다.’ 큰 소리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목청을 돋우어 떠들었다. 그때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조각배가 뿌연 강물 한쪽에 매어져있는 것을 보니 많이 외로워 보인다. 

수많은 세월 비바람 눈비 맞으며 얼마나 많은 사연을 간직했을지 알 것도 같다. 추억의 조각배 다리가 사방팔방으로 놓였지만 그리워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십년 세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지키고 있나보다. 그때 함께 배를 타며 즐거워했던 친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풋풋했던 얼굴들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간다.

조각배를 찾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우리는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며 강변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물위에 섬처럼 떠있던 낯익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콧날이 시큰해진다. 바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주위 경관이 몰라보도록 변했는데도 밀려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는 자부심인지 한없이 늠름하다. 그래 만나서 반갑다. 이 강물이 마르고 닳도록 너는 그 자리를 지켜야한다. 그 자리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말고 잘 지켜야 한다고 신신 당부를 했다.

언니를 졸라 이곳에 온 것이 약간은 후회가 되기도 했다. 가슴속에 새겨진 아름다운 추억의 강촌, 너무 많이 변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 차라리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아름다운 강촌이 앞으로 몇 십년 아니 내가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변함없이 내 마음 속에 아름답게 남아 마음의 양식이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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