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성 전투의 전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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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성 전투의 전개(4)
  • 이주우 옥천향토사 연구회 회원
  • 승인 2023.08.0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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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왕의 관산성 재점령 및 영동 공격

침현은 어디인가? 용목리는 ‘용이 목욕을 했다’라는 전설이 있고, 위 지도를 보면 용목리(지오리) 옆이 논 즉, 습지이고, 대청댐 담수 후 좋은 논을 많이 잃었다고 말도 있어, 습지가 많이 있고, 현재는 용목리에 소옥천 인공습지가 있어 습지와 관련있는데, 위덕왕이 ‘가르뱅이재’를 넘어 용목리를 지나다가 습지에 말이 빠져 왕도 습지에 빠져, 왕이 몸을 씻어 ‘용이 목욕을 했다’라는 전설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삼국사기의 탄현 혹은 침현 말 중에 침현(沈峴)의 침(沈)자를 뜻을 보면  ‘빠지다, 잠기다, 늪’이라는 뜻을 감안할 때 가르뱅이재가 침현이라고 생각되며, 위덕왕의 철수로로 추정되는 곳과 용목리 및 황골전설이 삼국사기의 대신들의 탄현이야기와 일치한다. 위덕왕의 철수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백리 앞의 황골(승지골) 전설인데, ‘이백리 앞 고리산성 아래 골짜기를 황골, 승지골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관산성 전투 시 백제군이 신라군에 대승을 거두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성왕의 태자인 여창이 고리산에 주둔하고 있고, 신라군사가 여창을 공격하려고 기어오르려다 마침 도착한 성왕이 급습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전설인데, 신라·백제격전지(관산성) 지표조사 보고서와 1984년 옥천향지에서의 내용이 조금 차이는 있으나 중요하지 않으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관산성 전투 시 성왕과 위덕왕은 만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전설을 틀렸다고 무시하기보다는 백성의 눈에서 위덕왕의 철수 작전을 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라 생각되어 황골 전설을 정리하였다. 첫째, 백제가 이겼다는 것과 둘째, 두 명의 왕이 있다는 것, 셋째, 황골(승지골)이 이백리 고리산 밑에 있는 황골이 아니라 고리산 북쪽에 있는 항곡리(항골, 황골)일 것이라는 것이다.

첫째, 백제가 이겼다는 내용, 관산성 전투는 백제가 신라에 일방적인 패배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고 인식도 신라의 승리로 되어 있으나, 백제의 승리를 말하는 황골전설은 삼국사기 660년 탄현 기록에서 백제의 승리를 증명할 수 있는 전설이고, 이외에 대전 소태고개전설, 핏골전설, 영동의 어서실 전설 그리고 백골산등 관산성 전투를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지명 및 특히 옥천 옥각리 고분 유적 및 이성산성 발굴 평가등이 백제의 승리를 말할 수 있는 자료가 다수 존재하며, 이는 관산성 전투 과정에서 언급하겠다.

둘째, 만나지 못한 성왕과 위덕왕이야기. 이는 일본서기에 위덕왕의 철수와 이를 신라군이 추격할 때, 식장산쪽에서 왕급 규모 백제군이 신라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을 경우 성왕이 죽은지 모르는 백성의 눈에는 황골전설과 같이 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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