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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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1)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8.17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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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언젠가는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게 되어있는 군대인데, 자의든 타의든지 통지서가 나왔으니 그냥 가면 되지 않겠니?” 염치없는 엄마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있었겠니? 정말 그때 심정은 무 뽑다 들킨 놈이 큰소리치는 딱 그 심정이었단다. “엄마는 진짜 너무해요, 나를 위해서 일찍이 군대 가서 정신 차리라고 하는 엄마 마음도 잘 알지만, 이렇게 추운 한겨울에 갑자기 군에 가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주위의 내 친구 엄마들은 솔직히 빽을 써서라도 어떻게든 자기 아들을 추운 겨울 아닌 따뜻한 봄에, 가능한 한 수도권으로, 또 가능한 행정병으로 빼달라고 부탁들 하느라 난리인데…. 솔직히 나는 아빠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이면서…. 그리고 또 문제는 우리 기말시험이 12월 22에 끝나는데 어떻게 20일에 입대해요? 시험 안 보고 입대하면 나중에 복학해서 한 학기를 다시 다녀야 하는데. 그리고 벌써부터 시험 끝나면 친구들과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계획을 다 짜놓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입대하라니요?” 그렇게 말하고 너는 나가버렸다. 그때 엄마는 네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며 이를 어쩌나? 고민이 시작됐다. 

아빠와 상의한 후 어차피 입영 통지서까지 나왔으니 엄마는 그냥 군대 보내자고 했지. 너는 내키지 않지만 엄마 말을 따르기로 했는데 문제는 네 기말시험이었다. 아빠가 알아보니, 한 가지 방법은 아빠가 사단장한테 가서 경위서를 쓰고 시험 끝난 다음 날 바로 입대하는 것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아빠는 바로 사단장을 찾아가 경위서를 쓰고 도장을 찍고 너를 시험 끝난 다음날인 23일에 입소시키겠다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네가 22일 시험 끝난 그날 친구들과 밤새 송별 파티를 하고 새벽에 들어왔지. 그런 너를 아침 6시에 차에 태우고 떫은 마음으로 증평으로 향했다. 잠 한숨 자지 못한 너를 데리고 이른 아침 군대를 보내는 엄마 심정은 참으로 착잡했다. 내가 잘하는 것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 가 분간이 서지 않았다. 너를 훈련소에 내려주고 돌아서자니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왔던 내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정문을 들어가서 네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며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잘 훈련받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던 네 목소리가 귀에서 쟁쟁한 채 네 동생과 차에 올랐다. 턱을 괴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나에게 김 기사 아저씨가 침묵이 어색했던지 어렵게 운을 뗐다.

“마음이 참 힘드시지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사모님.” “뭐가 대단하다는 말이에요? 자식 군대 보내는 건 대한민국 엄마들이 다 때가 되면 하는 일인데요.” “실은 제가 지금까지 사장님을 수없이 모셔왔습니다. 그동안 모셨던 사모님들도 하나같이 말로는 요즘 애들 군대 보내서 고생 좀 시켜야 사람 된다고들 하셨어요. 

그렇지만 막상 당신 아들이 군대 가게 되면 어떻게든 따뜻할 때, 가능한 서울 근교로, 또 행정병으로 보내려고 힘을 써서 조금이라도 고생 안 하고 편한 데로 보내더군요. 사모님처럼 이렇게 추운 한겨울에 사장님께서 직접 사단장을 찾아가 경위서까지 써가면서 시험 끝나자 다음날 새벽에 훈련소에 입대시키고 오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아들 가진 사람이 다 가야 하는 군대에 보낸 것뿐인데 왜 그게 그리 대단하다고들 야단인지 모르겠네요.”

우리 학교 교수들도 엄마에게 계모도 아닌데 왜 이렇게 추운 동지섣 달에 아들을 군대 보내느냐, 너무하신 것 아니냐고들 했을 때도 엄마는 똑같이 대답했었다. 차 안에서 네가 입대 통지서를 가지고 와서 왜 하필 이렇게 추운 겨울, 그것도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를 끼고 군대 가야 하냐고 했을 때, 엄마가 이렇게 대답했던 게 생각난다.

“너처럼 키도 크고 튼튼하고 건장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추운 겨울에 군대 안 가면 누가 가냐? 키도 작고 말라서 체중도 적게 나가고 약하게 생긴 사람이 이 추운 날씨에 군대 가서 어떻게 견디겠니? 누군가는 이 추위에도 군대에서 훈련하고 있지 않니? 그런데 왜 너는 안 된다는 말이니? 빽 있는 사람은 추울 때, 더울 때 다 빠지고 빽없는 사람들만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 간다는 말이냐?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정말 내가 문제가 있는 엄마인지, 네 엄마를 희귀동물 보듯 이상하다고 보거나 대단하다고 보는 주위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것인지조차 헷갈렸다. 남들이 다들 그러는데 너는 속으로 얼마나 이 에미가 야속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후 아빠와 약속했다. 기왕에 입대했으니 군을 믿고 맡기자고. 어디로 배치가 돼서 무슨 임무를 맡게 되든지 우리는 든든한 우리 아들을 믿고 개입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네가 입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씨는 더 추워져 하필 영하 17~20도를 오르내렸다. 혹한에 북한에서 공비까지 17명이 내려와 총격전이 있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러잖아도 동장군의 영하날씨에 훈련받는 너를 생각하며 걱정하던 차에 웬 공비까지 쳐들어왔다니 심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 평소 말수 적은 네 동생이 그러더구나.

“엄마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이렇게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고 공비까지 쳐들어왔는데 형이 괜찮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불안한 터에 평소에 말수 없는 경훈이까지 나서자 갑자기 불안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날 출근하니 만나는 사람마다 이 시기에 왜 군대를 보냈냐며 나더러 이상하다고들 했다. 그때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덧 6주의 훈련이 끝나고, 임관식이 있다며 참석하라는 통지서가 왔다. 아빠와 엄마는 기쁜 마음에 정신없이 달려갔다. 임관식 단상에는 아빠가 경위서를 제출했던 사단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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