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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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12)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8.24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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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권해 본의 아니게 단상에 앉게 되었다.

잠시 후 부모들이 운동장으로 내려가 아들의 신고를 받는 시간이었다. 늠름하고 건강해 보이는 네 모습이 그때처럼 자랑스러울 때가 없었다. 엄마는 무사하게 잘 견뎌줘서 고맙고 탈 없이 지내줘서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그 후 한동안 네가 어디로 가서 배치되었는지 통 알 수가 없어 궁금했다. 그러던 중 너의 편지가 도착했다. 임관식 후 열흘 동안 부산으로 내려가 대기하다가 창원으로 배치되어 탄약창을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고 했지. 탄약고는 부대에서 떨어진 산꼭대기에 있어 밤에 산꼭대기로 올라가 새벽 2시가 넘도록 부동자세로 총을 들고 탄약고를 지키다가 부대로 내려오면 거의 3시가 된다고. 그래도 너는 할 만 하다며 엄마가 저를 그렇게 키우시지 않으셨냐면서 춥지 않고 따뜻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고 지낸다고. 참으로 장하고 뿌듯했다. 역시 엄마 아들이었다 너는. 나아가 너는 이렇게 말했지.

“엄마가 군대 보낸 뜻을 잘 알고 있어서, 군대에서의 고생이 앞으로 제 긴 인생에 큰 도움이 되도록 뜻있는 생활을 할게요.”

속 깊고 어른스럽기까지 했다. 엄마를 위로까지 해주는 네가 너무 기특하고도 고마워서 엄마는 편지를 읽고 또 읽고 하며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지.

다음 편지는 떨리는 손끝으로 뜯었다. 부대에서 신상 조사서를 작성하라고 해서, 아빠 직업란에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이라고 사실대로 써서 냈다고. 그런데 부대장이 너를 불러 아빠가 진짜 수자원공사 사장이 맞냐고 확인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고. 내용인즉 수공 사장 아들이라면 설마 이 시골 부대까지 와서 한밤중에 산꼭대기 탄약창을 지키는 임무를 맡도록 그냥 두었겠냐. 믿을 수가 없으니 확인해보라고 부대에 지시했다고. 수자원공사 창원지사장한테 전화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니 창원지사장은 그런 일이 있으면 본사에서 연락이 왔을 텐데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었다지. 그렇게 되니까 부대에서는 다시 너를 불러 확인하고 창원지사장은 본사 사장 비서실에 전화해서 사장님 아들이 혹시 군대 가서 창원에 와 있냐고 전화를 했었단다. 비서실장은 사장님이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고 해서 창원지사에도 알리지 않았고 사장님 아들이 군에 간 건 맞다고 말했단다. 이런 소동이 난 후 사실 확인이 되자 부대장은 다시 너를 불러 어떻게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냐면서 그간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라도 원하는 곳으로 근무지를 옮겨주겠다고 했지만, 너는 “할 만 합니다. 그냥 탄약창 보초 서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네 편지보고 엄마는 너무나 고맙고 흐뭇했다. 역시 내 아들이구나. 엄마 아들답게 바르게 처신할 줄 아는 네가 그렇게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정말 남의 열 아들 부럽지 않게 네가 든든했다.

얼마 후 첫 휴가를 나온 네가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기절할 뻔했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건장한 네 모습은 사라지고, 체중이 빠져 전혀 다른 얼굴과 홀쭉이가 된 너를 보며 가슴이 내려앉고 억장이 무너졌다. 몇 달 동안 어떻게 저리도 말라버렸을까? 이유를 물으니 밤에 거의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꼼짝 않고 보초 서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입대 전 80kg이던 체중이 68kg이 되어 왔으니 엄마로서는 죄책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너는 매일 밤 부동자세로 장시간 보초서느라 무릎에 병까지 생겼다고. 입대하던 날 엄마와 헤어지고 들어가자마자 조교로부터 엎드려뻗쳐! 한 다음 몽둥이로 엉덩이를 마구 두들겨 맞아 죽는 줄 알았다고. 조교가 너에게 “네가 뭔데 군대를 무시하고 입대 일자보다 사흘이나 늦게 머리도 깎지 않고 들어왔냐.”고 두들겨 맞았다는 말을 제대 후에야 듣고 엄마는 너무나 가슴이 쓰렸다.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게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군 생활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늘 부모님 걱정이 앞서는 네 효심을 들여다보며 읽고 또 읽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입대한 군 생활을 마치고 네 자리에 설 줄 아는 너의 자세를 보며 그지없이 고맙다. 모든 일이란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음을 알기에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는 너의 성숙하고 깊은 깨달음이 어찌 21살짜리 어린 남자가 터득할 수 있는 일이었겠느냐? 너의 효심은 물론이거니와 한 남자로서 세상을 보는 자세가 엄마에겐 새삼 더없이 든든하고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어주는구나.

이 세상 어느 에미가 자식을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키우지 않겠느냐만 너의 탄생은 엄마에겐 축복이었고, 너의 탄생으로 엄마는 진실한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다만 엄마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엄마들과는 달리 평생 또 다른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할 자식 같은 학생들이 옆에 있었다. 그래서 다른 엄마들처럼 가장 소중한 아들의 성장 과정에서 온전히 네 빈 곳을 채워주지 못했고, 곁에 함께 해주어 네가 사랑이 필요할 때 따뜻한 손으로 언제나 잡아주지 못했다. 남들은 엄마더러 그만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지 않았냐고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곳에 회한이 남아있다. 누구를 위한 성공적인 삶이었을까? 엄마가 두고두고 너와 네 동생에게 가슴 저미도록 미안한 이유다. 누가 뭐라 해도 너는 엄마의 보물이고 보배이다. 세상 어느 자식과도 바꿀 수 없는 엄마의 보석 같은 아들임을 가슴에 담고 살아라.

석원아. 엄마는 지금까지 가슴을 후비는 후회막급한 일이 있다. 네가 5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강의하고 기진맥진하여 퇴근하는 때가 많은데, 대학원 리포트를 쓰고 나는 그날따라 몹시 피곤해서 누워 잠들 찰나였다. 네가 안방에 와서 그날 밤을 엄마 옆에서 자겠다고 우겼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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