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기 의병장 출신 이봉, 박춘무, 이축 옥천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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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기 의병장 출신 이봉, 박춘무, 이축 옥천군수
  • 전순표 시인 옥천향토전시관
  • 승인 2023.08.3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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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의병장 출신으로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대항하여 공을 세워 옥천군수에 제수된 분으로 상주의병장 이봉(1593~1594년, 후 1596년 괴산군수), 청주의병장 박춘무(1596년), 함창 의병장 이축(1597년 전후) 군수 세 분이 있다.

이봉 옥천군수, 사헌부감찰 제수
 
선조실록 1593년(선조 26년) 11월 21일 기사에서 “이제는 국사가 조금 안정되었으니 목민관은 가려서 제수해야 합니다. 옥천 군수 이봉(李逢)은 군공으로 승진 제수하였으니 체차시키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위와 같은 주청에 따라 주상께서는 선조실록 1595년(선조 28년) 12월 7일 기사에서 “성수익을 개성부 유수로, 신식(申湜)을 동부승지로, 조목을 내섬시정으로, 채경선을 호조 좌랑으로, 김신국을 겸 시강원 사서로, 이봉(李逢)과 우도전(禹道傳)을 사헌부 감찰로, 최동립을 예문관 봉교로, 박동망과 이정험을 예문관 대교로 삼았다.”

이봉, 박춘무 의병장 등 보내야
 
선조실록 1595년(선조 28년) 12월 28일 기사에서 "근일 왜정에 대해 비변사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상사는 이미 잘못 들어갔고, 부사는 유격과 한 마음으로 합하였으며, 거취에 대해서는 조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고 하나, 먼저 사람과 말을 보내어 떠나가기를 다그치는 정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에는 오직 우리의 방비를 다해야 할 뿐이니, 괴산, 남원, 옥천(沃川) 등지에 전의 의병장을 보내어야 합니다. 
 예컨대, 이봉(李逢)은 나이가 늙기는 하였으나, 43번의 전투를 겪으면서 적을 살상한 것이 가장 많습니다. 전에 옥천 군수로 있을 적에 처사는 혹 서투른 점이 있었으나 인자로써 백성에게 임하고 청렴으로써 자기를 단속하였으며, 박춘무(朴春茂)는 또한 용병(用兵)에 능하여 패전한 적이 없었으며, 신경행(辛景行)은 청렴하고 활을 잘 쏘니 모두 거두어 서용하여야 합니다."하였다. 

김시약 의병, 이봉 괴산군수 귀속을
 
그리고 1596년(선조 29년) 2월 22일자 선조실록에는 “지금 괴산의 선봉장 김시약(金時若) 또한 그의 부형이 피살된 것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함으로써 그 공로가 현저하였는데, 그 휘하의 군사가 여라 장수의 침해를 받아 혹은 병사(兵使)에게 귀속되기도 하고, 혹은 본군에 분속되기도 하여 장졸이 서로 헤어져서 조만간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김)시약이 군관을 보내 그 곡절을 진술하였는데, “(괴산)군수 이봉(李逢)에게 귀속되어 별개의 일군(一軍)이 되어 적을 토벌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 뜻이 가상하니 그 말을 따라 주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또 복수할 마음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으니, 성상께서 근신을 보내 애통해 하는 글을 내리고 성심으로 개유하여 사방에 널리 고하면 원근이 호응하여 다투어 의병을 일으킬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중략>~ "김시약의 일은 비변사가 의논하여 조처하라." 하였다.

1596년(선조 29년) 11월 26일자 선조실록 기사는 “(주)상이 이르기를, "선봉군은 누가 거느리는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이제 병사(兵使)가 되었으므로 김시약의 군사를 이봉(李逢)에게 주었습니다. 임진년에는 왜군의 한 부대는 대구, 인동, 상주를 거치고, 또 한 부대는 경주, 신령, 군위, 용궁을 거치고, 또 다른 부대는 성주, 금산(김천)을 거쳐서 죽산(竹山, 안성)에 들어오는 세 길을 취했었습니다”.

그리고 1602년(선조 35년) 4월 30일 선조실록에 의하면 ~<중략>~“지난 임진왜란 초에 의병을 먼저 창의하였는데, 그의 외삼촌 이봉(李逢)을 장수로 추대, 토적에 힘을 다하였으니, 2백 명 가까이 참살한 것도 대부분 채유희가 규획한 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봉이 괴산군수가 되자, 채유희도 그곳에 따라갔는데 다시 이웃 고을 선비들과 함께 의곡 1천여 석을 모아 조정에 글로 아뢰고 호조 문적에 기록하여 뒷날 명나라 군사 군량에 보태게 하고 그 고을 사람 김기남 등을 유사로 삼아 그 일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이봉 군수 딸, 이옥봉 여류시인 
 
이봉 군수는 조선 중기 허난설원과 함께 당대 최고의 여류시인이었던 이옥봉(李玉峰) 시인 아버지다. 이옥봉은 서녀였기 때문에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었다. 시집은 그녀의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집』과 『가림세고』가 있다. 작품으로 「몽혼」과 「규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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