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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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禮)
  • 이종구 수필가
  • 승인 2023.10.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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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불리웠다. 우리가 붙인 이름이 아니라 콧대 높은 중국인들이 부르던 말이었다. 

예의 기본은 효(孝)가 뒷받침해 준다.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불효를 큰 죄로 인정했다.

요즘 들어 보면 효라는 사상이 우리들 삶에서 좀 등한시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든다. 추석을 맞이하면서 항간(일부 언론들)에는 ‘추석에 시댁을 가야 하나 마나’, ‘제사를 지내야 하나 마나’ 등의 여론이 분분하다. 제사 지냄이 꼭 효와 관련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거론됨에 씁씁한 마음이 든다. 

며칠 전 친지의 모친상에 가려고 버스 정류소에 갔다. 정류소에는 40대 초반의 어머니와 중2 정도의 여학생이 대화를 한다. 

학생은 긴 의자에 앉고 어머니는 서서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가”하고 하니 “아이참, 안 먹겠다는데 왜 자꾸 먹으라고 해, IC8 열 받아 죽겠네”라고 한다. “저녁때니 저녁은 먹고 가야지”, “IC8, 잔소리 좀 그만해. 내가 요새 엄마 땜에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지 알기나 해” 소리를 꽥 지르고는 벌떡 일어나 제 엄마를 째려본다. 그러고는 멜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핸드폰을 문지르며 걸어간다. 엄마는 뒷모습을 보며 아무 말 없이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장례식장에 들려 문상을 했다. 친지의 누나는 눈꺼풀이 붉게 부을 정도로 울고 있다. 좀 전의 그 중학생과 대비가 된다. 

뉴스에서는 노인 학대의 가해자가 열에 여덟은 가족과 친척이고 그 중에 반이 자식들이라고 조사 통계를 보도하고 있다. 이젠 인구의 20%가 노인이라는 초 고령 사회가 됐다고 한다. 노인들을 공경하는 것은 예의 근본이고, 이 사회를 지탱해가는 원천이다.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늙는다. 

성경의 십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며 솔로몬의 잠언에서는 “아비의 명령과 어미의 법을 마음에 새기면 잠자리에서도 보호를 받는다”라고 권면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부모를 섬김에, 부모님의 잘못을 말씀드릴 때는 부드럽고 완곡하게 말하고, 들은 후 내말을 받아드리지 않더라도 공경하며 부모님의 뜻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힘들어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라고 했다.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물론 잘못된 일이 아닌)이 효라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 자식을 기르고 손주들을 보았다. 일이 생겼을 때, 자식들의 뜻에 어긋나지만 내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 줄 때 흐뭇하다. 요즘은 가끔 고민거리가 생기면 자식들에게 자문을 구해본다. 

신 개념의 현대적 사고방식을 체득하기 위해서이다. 미처 생각지 못한 해결의 방법을 들을 때는 대견하기도 하다.

못나고 부족한 부모라고 해도 그분들이 있기에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서 있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이라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반포지효(反哺之孝)는 자녀들이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어미를 핀잔하는 아이들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누가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자문하면 필자 역시 부끄럽다. 지난 날 부모님 꾸중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지금은 회한에 젖기도 한다. 추석을 보내며 “효자 집안에 효자 난다”는 말을 곰곰이 되새기고 가족의 화목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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