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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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3.11.3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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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룡배 털쪽 
-오룡배(五龍背) 2」의 온천과 겨울을 그리며-

1940년 정지용이 길진섭과 탔다는 오룡배의 까솔린 차를 생각한다. 그는 외투를 벗을 수도 없이 꽉 끼어 탄 차에서의 풍경을 참 기이하게 묘사하고 있다. 짐승의 방광을 말린 것 같은 그릇, 이부자리 보퉁이와 바가지 짝을 꿰어 든 사람들을 보고 조선 사람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한 여인네가 매듭단추를 끄르고 젖가슴에 파묻힌 발가숭이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 조선의 어머니다. 그 어머니는 곱고 예쁘기까지 하다고 하였다.

  겨울눈이 내린다. 정지용은 말하였다. 만주사람들은 어디서 털쪽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털쪽을 붙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19회 연변지용제를 참가한 일행은 그의 발자취를 찾아 오룡배를 들렀다. 온천에서 밥도 먹었다. 노천 온천에서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러시아와 접경지대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털쪽을 만났다. 

  양력 9월의 햇살은 우리의 목마름을 부추겼다. 9월의 늦여름 하늘 아래에 어디서 그렇게 많은 털쪽들을 가져다 진열해 놓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정지용의 기행산문에 소품처럼 자리하였던 털쪽에 모든 신경이 쏠렸다. 그의 발자취와 운치를 이 털쪽에서나마 찾고 싶었다.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넘기는 털쪽을 들고 손님을 부르는 가게로 들어갔다. 4회 국제연변백일장의 심사를 위해 참석했던 이 시인과 나는 가게로 빨려 들어갔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언가 머쓱한 분위기를 만든 점원의 미소 짓는 얼굴을 우리는 외면하기가 어려웠다는 표현이 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털쪽 모자와 목도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가진 돈에는 택도 없는 가격을 부른다. 살 수 없다. 포기하였다.
  가게 밖으로 나서는 우리 일행을 막아선 점원은 우리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소지한 돈을 주머니와 지갑에서 다 내보이며 살 수 없음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점원은 막무가내로 물건을 사라고 종용하였다.

  하물며 이 시인과 나를 부부로 착각한 점원은 이 시인에게 돈을 지불하라고 한다. 참 맹랑한 일이다.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고 하자 점원은 한술 더 뜬다. 애인이냐고 되묻는다. 그것도 아니라고 하자 점원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더니 이제는 이 시인에게 돈을 빌려주란다. 우리는 싫다고 하였다. 

  아뿔사! 
  우리에게 주어진 쇼핑 시간이 다 지났다. 이젠 흥정도 구경도 끝이다.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 우리를 보고 점원은 웃는지 우는지 참 이상한 표정을 잠깐 보였다. 이렇게 사람의 관계를 자기 편의대로 고리로 이어 붙이던 점원은 그냥 있는 돈을 다 내놓고 가져가란다. 그 털쪽을.

  이런 횡재가 있나. 

  이 시인의 부인 것까지 두 세트나 사들고 나온 우리는 일행이 기다리는 차로 가는 내내 배꼽을 쥐고 웃었다.

  룸메이트인 여류 시인에게 차에서 털쪽 얘기를 하였다. 그녀는 이 시인과 내가 산 털쪽을 못 산 것에 아쉬움을 내비친다. 차를 기다리라고 해서 사야한다며. 그러나 차는 그녀의 소망을 등에 업고 출발해 버렸다.

  12월의 한밤중. 내일은 폭설이 내린다는 예보다.

  전기 히터 앞에서 까솔린 차를 다시 떠올린다.

  어깨를 비틀만한 틈도 어렵다던 까솔린 차와 관광객의 주머니 잔돈까지를 다 내놓게 하며 털쪽을 팔던 점원을 생각한다. 

  정지용은 까솔린 차에서 조선을 닮은 조선의 어머니를 만났고 전혀 엉터리 없는 만주어를 함부로 써서 의사소통을 함에 놀랐다고 했다.

  75년이 지난 오늘 나는 점원의 얼토당토 않았던 흥정과 엉터리 한국어와 되도 않는 중국어 그리고 어줍지 않은 영어를 섞어 의사소통을 했음이 경이롭다.  

  올 겨울, 폭설이 내리는 날이 하루만 있었으면 좋겠다. 

  이 털쪽을 머리에 쓰고 하나는 목에 두르고 정지용이 경성이나 교토에서 옥천을 다녀갈 때마다 걸었던 옥천역에서 정지용 생가까지 토박 토박 걷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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