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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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29)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2.28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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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님은 제 어머니 다음으로 제게는 소중한 분으로 남을 것입니다.” 나의 정년 무렵 10년 이상 미국 간호사 취업사업 파트너로 일했던 그가 40대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내게 한 그 말이 내게는 가장 큰 위안이고 보람이었다. 드라마 「최고의 유산」에서 ‘우리가 받는 인생 최고의 선물은 우리가 남의 인생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걸 알 게 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되새겨보며 나는 남이 알든 모르든 그와는 관계없이 젊은 세대에게 삶에 올바른 삶의 변화를 일으켜 줄 수 있는 삶의 자세를 내가 보여주었다면 그보다 더 큰 인생 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싶었다. 청와대 신문고 사건은 나중에 알아보니 뉴욕 사건 때 간호사들을 빼내 가려던 알선업체의 소행이었다. 거액의 커미션을 챙길 수 없게 만든 나는 그들에게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실제로 우리 프로그램 이후 알선업체들은 신문광고란에서 자취를 아예 감추었다. 간호사들이 믿을 수 있고, 일체의 비용을 받지 않는 NMC 대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간호사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자 한 내가 겪은 혹독한 대가였다.

학장선거에서 100% 득표로 재선출 되었으나… 

2004년 8월,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학장 4년 임기가 다가왔다. 임기가 종료되기 전에 학교에서는 차기 학장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를 치렀다. 나는 학장선거일 마침 제주도에서 ‘전국 전문대학 학장협의회’가 있어 제주 출장이 잡혀있었다. 내가 없을 때 선거를 치르는 것이 더 공평하고 공정한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굳이 간 출장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간호보건계 전문대학 학장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78개 전국 전문대학 학장들의 협의체로서 내가 회장이 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대학 설립자인 오너 학장들이 주로 회장을 역임해왔는데, 간호학과만 있는 단과대학인 학장이 회장에 선출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나름 그 책임과 동시에 간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꼈다. 그때는 전문대학 학장협의회에서의 주요 이슈는 전문대학도 대학명을 ○○대학교로 하고 기관장인 전문대학 학장을 일반 대학교 단과대 학장과 구별하기 위해서도 학장을 총장으로 명칭 변경을 하고자 교육부와 협의했고, 결국 학장 명칭이 총장으로 변경된 것은 2007년이었다.

또 「한국 간호보건계 전문대학 학장협의회」에서는 간호학과와 보건계 물리치료과는 최소한 4년제 학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요청을 강력하게 교육부에 하고 있었다. 동시에 학장들이 해외 대학 사례를 찾아 학문의 필요와 국민의 요구에 따라 전문대학의 간호학과와 물리치료과는 특히 우선으로 4년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간호과의 경우 간호협회와 전체 간호계의 의견수렴을 통해서 「간호교육 4년제 일원화」 요구의 목소리가 높던 때였다. 간호보건계 학장협의회 회장으로서 나는 일선에 나서 간호교육 시스템의 3, 4년제를 4년제로 일원화해야 하는 합리적 이유와 근거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그리고 전국 3년제 대학 간호학 교수들로 연구팀을 구성하여 전문대학학과 특성에 따른 수업연한의 다양화에 관한 연구를 하여 그 근거와 결과를 협회에 제출했다. 4년제에 관한 관심과 열기가 큰 시기였기에 제주도에서의 학장 회의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그 회의 도중 나는 총무과장으로부터 내가 100% 득표로 학장으로 재선출되었다는 선거 결과를 보고받았다.
“내가 김정일이라도 되는 거요? 100% 득표라니…. 교육부에는 학장 후보를 2인 복수명단을 올려야 하는데, 그것도 한 번 연구해 볼 문제이니 여기 회의 끝난 후 학교 가서 봅시다.”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 총무과장을 불러 교육부 제출 건에 관해 아이디어를 주었다. “학장 후보 복수명단은 나 외에 표가 나온 교수가 없으니 교학과장 정명실 교수를 올리되 서류에는 85:15 정도로 득표율을 표기해서 올리세요. 100% 득표했다고 해서 100:0으로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후 학장인사 문제는 교육부에서 처리할 문제라 나는 신경 쓰지 않고 학교 일에만 몰두했다. 그 후 교육부로부터 학장서류는 교육부총리 재가를 받아 청와대로 올렸으니 곧 학장 임기 종료일 전에 임명될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처리되겠지 생각하고 교육부 L 국장과 학장연임 축하 저녁 약속까지 8월 22일 6시로 잡았다. 

그러나 그 후 내 학장 임기가 끝나가는 데도 임명 소식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전혀 학장임명 건에 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할 건도 아니었던 이유는 임명직도 아니고, 직접선거로 투표하여 선출한 학장을 교육부총리 재가까지 거쳐 청와대에 올라갔는데, 무슨 의심을 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통상 그동안 우리 대학처럼 작은 대학장의 대통령 임명은 요식행위에 불과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믿음이 있었는데, 깜깜무소식이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시더라

학장 임명장이 이유 없이 지연되자 교수들도 조금 의아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여름방학에도 매일 출근하던 내가 학과장의 결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미국 뉴욕에 이민 간 지 30년이 넘은 K 선배였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깜짝 놀라 물었다. “선배님이 오랜만에 웬일이세요?” 가끔 뉴욕 출장 가면 NMC뉴욕 동문회에서 만났던 K 선배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오랜만에 나왔는데,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전화를 했다면서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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