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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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4.01.0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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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은 1876년 강화도 조약에 의해 부산포로 개항하였다. 이곳은 현재 201척의 배를 동시 접안할 수 있으며 116만 2000톤을 야적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춰 1867만(2014년 기준) TEU를 처리 컨테이너항만 중 물동량 세계 5위라고 한다. 정지용의 바람대로 현재 부산항은 대한민국 최대의 무역항이 되었고 그 규모가 크고 무역량이 많아 무수한 배들이 들고난다. 뿐만 아니라 부산항에서 외국과 내국의 섬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여객항으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923~1929년 일본 동지사대학 시절 정지용이 부산항에서 오사카항으로 가서 교토로 이동했다. 물론 옥천에서 부산까지는 기차를 탔을 것이다. 나는 정지용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가보기로 하였다.

옥천에서 밤중에 기차를 타고 새벽에 부산역에 도착하였다. 부산역에서 우동을 먹고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재작년만 해도 부산여객항은 비좁았다. 1층에서 환전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배에 오르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행렬이 눈에 띄었다. 여행사 직원들이 고객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새치기를 한다며 얼굴을 붉히는 장면도 목격되었다. 그때 부산항은 짐을 내려놓고 앉을만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비좁고 우울했었다.

그러나 2015년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이 해양도시 관문으로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고 관광명소로 자리 잡기위해 재정비되어 문을 열었다. 15만 4022m²의 대지에 9만 3932m²의 연면적으로 지하 1층 지상 5층 복합식 건물로 컨벤션센터, 출국장, 입국장, 주차장 등을 갖추고 그 위엄을 뽐내고 있다. 이곳은 시모노세키, 오사카, 하카다, 후쿠오카, 이즈하라, 히타카즈 등을 카페리와 크루즈가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드디어 내가 탄 오사카행 크루즈 ‘성희호’는 뚜-우 소리를 길게 뿜어냈다. 부산을 뒤로하고 바다는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용암이 솟아오르듯 이글거렸다. 이글거리며 울렁거리고 울렁거리다 쿨렁쿨렁 흔들어 댔다. 대단하였다. 여기서 금방 이 큰 배를 삼켜버리기라도 할 기세다. 끝없이 생각만 깊었다.

이따금 날아드는 갈매기가 멀미를 앓는지 수면으로 팩 내다 꽂힌다. 바다는 하염없이 짖어댔다. 앙칼지게 울렁이며 바이킹을 수도 없이 태웠다. 여객선 TV에선 1박 2일 먹빵 프로그램이 소리를 높인다. 나는 배멀미를 앓았다.

내 속은 바다보다 더 앙칼지게 훑어대며 울렁거렸다. 더 이상 메모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포기하였다. 비닐봉지에 내 얼굴을 깊이 묻고 온 몸을 울렁거렸다.

우리 해경이 대한민국 영해까지만 크루즈를 안내하고 일본 내해로 들어가니 되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는 어미 잃은 병아리처럼 마냥 슬프고 외롭다.

6. 못나도 울 엄마 
「부산(釜山) 4」에 동래여중 연극부 이야기가

동래여자중학교 연극부가 향파 이주홍(1906~1987) 원작 겸 연출인 연극을 부산여자중학교 대강당에서 공연한다.

솜털 안 벗은 1600여명의 여학생들은 유순한 양떼처럼 대강당에 쫑쫑히 앉는다. 부산여중 연극부장이 동래여중 연극부에 대한 “양교의 친선이 예술을 통해서 도모”된다는 환영사와 함께 꽃다발을 전한다. 동래여중 연극부장은 “환영에 실연할 연극이 퍽 부끄럽다”며 “예술을 향상하는 영광을 귀교(부산여중)와 갖고자 한다.”고 답사를 한다.

대한민국에 있는 문학관을 모두 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문학관 기행은 2011년까지 이어졌다. 당시에는 문학관 기행문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고자 하였었다. 남편은 사진을 찍고 나는 글을 쓰고자 자투리 시간이 나면 전국에 산재해 있는 문학관으로 달려갔었다. 그러나 나의 게으름병과 정지용에 대한 지독한 고질병이 도져 문학관에 대한 기행문 쓰기가 자꾸만 미뤄졌다. 틈만 나면 정지용에 대한 생각과 쓰기에만 골몰하였다.

그렇다고 그다지 거창한 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속만 태우며 그 미룸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엉뚱하게 그때 그 기억을 정지용의 여정과 관련된 이 책에 싣게 되었다. 방향이 바뀌었지만 그때 문학관에 미쳐 전국을 돌아다니며 땀을 흘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그리고 그때도 참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방안에 가득 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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