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용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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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용암사
  • 배정옥 수필가
  • 승인 2024.01.0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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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문화유산

아침부터 구름 사이로 들락거리던 햇살이 오후가 되자, 화사한 빛으로 한결 부드러워진 풍경 위로 내려앉고 있다.

발코니 넘어 건너편 산 능선은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문을 열어두었던 계절이 어제께 내린 비로 성큼, 다가온 봄은 날이 갈수록 연초록의 눈빛으로 젖어들고, 산의 어깨가 분홍빛으로 물이 들었다. 들쑥날쑥 변덕스런 날씨에도 수줍은 봄, 발걸음은 곳곳에 거침없이 초록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오고 있다. 뾰족뾰족 고개를 내민 새싹들의 속삭임이 어린아이들처럼 천진스러워 보인다.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광에 빠져 있노라니 문득, 지난주 빗길을 달려 다녀온 한국관관공사 주관 세계문화유산 ‘산사’교육 2박 3일 과정이 떠올랐다. 교육받는 내내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옥천군의 천년 고찰 용암사로 나는 서둘러 차를 타고 향했다.

먼저 내 고장 사찰 용암사를 거론하기 전 짧은 소견과 지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점을 미리 밝혀둔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51~4번지의 장령산자락, 연둣빛 봄이 살포시 앉아있는 용암사, 옥천의 대표적인 출사지로, 일출과 운해(운무)로 미국 ‘cnn go’이 선정한 한국의 가볼 만 한 아름다운 곳 50선에 선정,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낮게 깔린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떠오르는 붉은 일출을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모여든다. 특히 새해를 맞는 1월 1일부터 설날(음력)까지는 이른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꾸준히 찾는 곳이다. 옥천군에서는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전망대를 만들었다.

용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5교구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552년(진흥왕13), 의신조사가 천추국 인도를 다녀와서 553년의 법주사보다 1년 앞서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창건 이후의 중수, 중건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불우佛宇조나 <여지도서>의 사찰조에 용암사가 없기 때문에 조선중기 용암사의 역사는 알 수가 없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폐허화 설도 전해지고, 한동안 복구되지 못했던 탓도 있으리라. 다만 고려양식의 석탑과 마애불이 남아있어 고려시대에 법통이 이어져왔을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건물로는 대웅전, 산신각, 용왕각, 요사채, 범종각이 있다.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용암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용바위는 파괴되었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번 교육으로 안 사실인데 각 사철마다. 그 상황, 형편에 따라 주불과 협시불이 모셔진다고 했다.

옥천군 용암사 대웅전 안에는 1998년 11월 20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3호로 지정된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의 불상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으며,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뒤로는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의 후불 탱화는 목각처럼 두드러져 보였다. 불탄 좌측에는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는 불화 신중도(여러신의 모습을 그린 탱화를 말한다)가 있었다. 5종의 탱화도 보관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후불탱화後佛竀畵와 1877년(고종14)에 조성된 신중탱화는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한다. 1880년 불상을 열어 보았을 때 복장 속에는 순치8년 신묘년(효종)2년 1651년에 만들어진 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그로 인하여 제작년도가 밝혀졌다. 다라니경에는 경상북도 문경의 오정사에서 만들어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마당을 지나 야트막한 등성으로 올라섰다. 용암사의 볼거리, 2002년 3월 12일 대한민국 보물 1338호로 지정되었던, 동‒서 삼층석탑2기가 자연암반 위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 석탑은 일반적 가람배치와 달리 사방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자리 잡고 있다. 탑이나 건물을 세워 산천의 쇠락한 기운을 복돋아 주기위해 고려시대의 산천비보사상에 따라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석탑 앞에서 내려 보니, 산의 조망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푹 꺼진 옥천군 시내가 마치 크고 작은 블럭을 모아 쌓아놓은 듯 하였다. 앞이 시원하게 탁 트인 차경과 선경 앞에 사방으로 펼쳐진 조망들이 마치 장엄한 산수화가 연상되었다.

나는 등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듯 한 마음에 끌려 뒷산을 바라보았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 마애불을 보기 위해 뒷산자락을 급한 걸음으로 올랐다.

고려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은 키높이 3m. 장신의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정면관(正面觀: 앞에서 바라본 모습)의 여래입상이 정감 있는 얼굴로 반겼다. 전체적인 체격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유려한 옷주름 선 그리고 고부조(高浮彫: 높은 돋을새김)에 의한 적절한 양감이 어우러진 수작이다. 불상의 얼굴은 갸름한 달걀형으로 정제된 상호(相好: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에서 정감이 넘치면서도 위엄 있는 불성佛性을 잘 반영하고 있다.

천년도 더 된 고찰古刹 용암사
세월의 시공을 넘어 그림처럼 앉아있다

겹겹이 싸도는 신령스런 장령산자락
천년을 지켜온 산사엔 무심한 바람만이 드나들고
새소리 바람소리 고즈넉하여
처마끝 풍경소리마저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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