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31)
상태바
‘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31)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1.11 1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군다나 A 교수와는 고등학교 선후배라면서…. 그래서 저는, 맞 다. A 교수와는 고등학교, 대학 선배이다. 저는 학교 와서 처음에 A 교수와 가까이 지내고, 송 학장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학교 온 후 A 교수로부터 송 교수에 관해 좋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어 좋게 보아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학교에 오래 근무하면서 차츰 내 눈으로 보고 듣고 하다 보니 그동안 송 교수에 대한 내 생각이 한참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송 교수를 옆에서 돕고 진심으로 따 르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A 교수는 학장을 하고 싶어 본인이 저지른 일을 거꾸로 송 학장한테 씌우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저는 끝까지 A 교수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평소 성격적으로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정 교수가 그렇게 말하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선배들은 나를 만나자고 했다. 학장임명 건으로 어려움에 빠진 학교와 내 문제로 교육부와 청와대에 어떤 대응을 할지사면초가인 상황에서 동문 선배들이 지원군이 되어줘도 모자랄 판에 학장임명을 방해한 A 교수의 말만 듣고 난데없이 내가 A 교수를 억울하게 음해했다고 학교를 방문한 선배들을 보며 억장이 무너졌다.

선배들에게 A 교수를 비난하는 것도 나로서는 유치한 일이었고,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것 자체가 너무 황당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내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선배들과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고 마음먹었다.

“제게 그간 선배님들이 학교를 방문하셨을 때 한 번도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거만하고 도도하다고 하셨지요? 그간 선배님들께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던 이유를 말씀드리겠다. 학교에 저보다 NMC 선배 교수가 두 분 계시고, 타교 출신 교수도 저보다 선임자가 있습니다. 그동안 주양자 원장님, 김모임 장관님께서 내게 학장직을 받으라고 하셨음에도 인사권자의 명령에 불복하면서까지 내가 학장직 을 고사했다. 첫째 이유가 선배 교수를 의식한 때문이었다. 특히 박 교수님과 A 교수는 대학 선배이므로 중간에 두 번씩이나 NMC를 그만두고 나갔다 온 제가 학장을 먼저 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그때마다 원장님과 장관님께 박 교수님이 학장을 먼저 해야 한다고 추천했었다. 그렇게 선배 교수들을 의 식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2000년 NMC가 책임경영기관이 되면서 법적으로 원장의 학장 겸직이 불가능해져 선거를 통해 투표로 학장을 선출하게 되었고, 내가 학장으로 선출은 되었으나 남들은 축하한다고 야단인데 내 속은 참으로 괴로웠다. 학장은 학장으로서 권위와 위상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학장을 하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강한 선배 교수들을 옆에 두고 후배인 내가 학장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고문같이 느껴졌다. 매사 그분들의 심기를 살펴 마음 상하지 않게 해야 했고, 교수회 의 때 교수들이 일어나 학장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도 그분들은 불편해 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선배 교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정말 내가 소심하다고 할 만큼 신경을 쓰고 지냈다.  선배 교수들 앞에서는 남들이 내 칭찬하는 것이 가장 불편했다. 선배 교수들 마음이 불편함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배님들이 한 달에 한 번 학교에 거즈 접기 봉사를 하러 방문하셨을 때도 저는 다른 잡담이라면 몰라도 학교 얘기만은 금기사항으로 하고 의도적으로입을 다물어왔다. 만약 내가 학교에 관한 발전상황 특히 처음 개설된 NCLEX 과정과 국내 유일의 호주의 대학, 미국의 대학 등과 공동 교육 사업, 해외 취업 등을 이야기했다면 학장이 동문들한테 제 자랑하는 것으로 매도되어 제가 힘든 상황에 빠질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그렇게 저라는 개인에 관한 얘기는 물론 학장으로서 학교 운영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학장인 내가 중심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내 자 랑한다고 할까 신경 쓰여 일체 입을 다물고 지냈더니 결국 선배님들로 부터 도도하다는 오해까지 받게 되었다. 내가 선배들한테 도도해서도 거만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입을 다물고 사는 게 가장 속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학장 임명 건은 정 교수 이야기대로 뉴욕에서 들른 A 교수 동기 K 선배에게 직접 들었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정교수도 같이 들었다. 그리고 교수들이 학교 공문 내용을 발설하며 통화 한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대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니까 그 이름과 전화번호를 말하라 해도 절대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걸 밝히면 학교가 난리가 날 거라 했다. 오죽하면 정 교수는 A 교수가 그 전화번호를 밝혔을 때 만약 그 사람이 학장 임명 건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면 정 교수가 사표를 내고, 만일 이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이면 A 교수가 사표 내자고까지 했겠냐. 교수회의에서 강력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더니 한달의 기한을 주면 밝히겠다고 해 놓고 한 달 지나도록 말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교수회의에서 한 달이 지났으니 밝히라고 했지만, 이제와서는 못 밝히겠다고 했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당시 동문회장이던 최규옥 회장님이 “A 교수는 미국 K 동문이 그런말을 했다는 사실도 부인하더라.”고 하기에 나는 K 동문의 뉴욕 전화번호를 주며 직접 통화해서 진위를 가리자고 제안했다. 급기야 다음날 동문회장이 미국에 있는 K 동문과 통화하여 내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