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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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지게
  • 배정옥 수필가
  • 승인 2024.01.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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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용암사에 이어서>

대웅전 꽃살문양은 고색을 더해가고
아미타여래좌상 정좌로 앉아
설법해도 두개의 동서석탑
골똘한 상념에 잠겨 있다

뒷산 자락
둥실 떠 있던 마애불이 가사 폭을 펼치고
바람이 하늘을 건너
산신간 처마 끝만 바람질 하고 있다. 
‒졸시 「용암사에서」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용바위에서 서라벌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했다는 설이 있다. 마의태자가 신라 멸망을 동탄하며, 유랑하던 중에 이곳에 머물면서 누이 덕주공주를 그리며 조각했다는 설도 있으며, 참고로 덕주공주가 머물렀던 제천덕주사에서도 마애불이 조성되어있다. 머물던 마의태자가 떠나자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조성했다고 하여 마의태자상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 마애불은 영험이 있어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앉는 일이 없다고도 전해진다는 설이 있어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천개의 얼굴이 있다고 했던가. 간절한 마음은 번뇌가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해 그림자가 대웅전 팔작지붕 용마루 끝에 걸려있다. 줄어든 햇살이 구겨진 저녁, 며칠 동안 시원치 않았던 마음은, 연둣빛 물결의 배웅을 받으며 내려오는 동안 한결 가벼워진 듯하다.
 다만, 주차장이 경내 가까이 들어와 있고, 오르는 계단 양 옆으로 성벽처럼 쌓아올린 커다란 벽돌바위들로, 세속의 지나친 편리함을 추구하다보니, 천년 고찰의 고색창연함이 더해야 할 사찰은 자연의 풍치를 지니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을 금할 길 없었다.

아버지의 지게
 
 어느새 여름의 문턱에 성큼 들어서고 있다. 연두에서 진초록으로 자꾸만 색을 바꾸는 나무들은 서로 햇빛을 받으려고 다투어 세를 넓히고 있다. 지천에는 농부의 땀방울처럼 번져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언덕배기 포도밭에서는 또랑또랑 청포도가 파랗게 익어가고 허리 굽힌 농부의 구릿빛 살갗도 과육처럼 익어간다.

 아버지는 농사일 밖에 모르셨다. 팔십여 년 삶을 사시면서 한몸처럼 지게를 지고 다니셨다. 주무실 때 빼고는 주저 앉은 활대처럼 휘어진 아버지 등에는 삶의 무게가 지워져 있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비가 올란게벼.”
 밤새 머리맡에 잔기침만 쏟아놓았던 아버지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루를 시작하셨다. 들일 나가시는 아버지, 어린 송아지 앞장세우고 어미 소와 어스름 새벽길을 나서셨다. 커다란 지게에 묻혀 다리만 보이셨던 아버지의 지게에는 부석한 겹 시름만 한 짐 가득했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세월을 등에 지고도 새살이 차오르지 않는 그리움으로 먹먹히 다가선다. 

 싸락눈이 내리고 서럽도록 푸르른 봄 쑥이 시린 눈 깜빡거리며 노오란 개나리가 담장을 넘을 때면, 솜씨가 좋으셨던 아버지는 일 년 농사를 짓기 위해 지게를 고치고 만드셨다. 단풍이 노을처럼 물들었던 지난 가을에 고르고 골라 곧고 단단한 늙은 밤나무를 잘라 그늘에 서너 달 말리고 다듬었다. 지게는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농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력에 의한 운반도구로 꼭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지게 몸채는 가지가 달린 자연목 두 개를 위는 좁고 아래는 넓게 벌려 나란히 세우고 그 사이에 서너 개의 세장을 끼우고 탕개로 조여서 고정해 놓았다. 아래위로 질빵을 걸어 어깨에 메도록 했으며 등이 닿는 부분은 짚으로 짠 등태를 달았다. 부스러기 짐을 나르고 운반할 때 쓰였던 갈채(바수게)는 여름내 잘 자란 싸리나무를 베어다 껍질을 벗겨 내고 굵은 가지는 반으로 쪼개고 엮어서 혼을 불어넣듯 온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그리고 윗부분이 잔가지가 있는 적당한 곧은 나무를 골라 지겟작대기까지 만든 지게를 싸리문 옆에 세우셨다. 당신의 분신으로 한 평생을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고 옹이 박히도록 한 몸 되어 지게처럼 낡아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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