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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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35)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2.08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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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것이 학교와 김 학장을 도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김 학장이 발령받은 직후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전재희 의원께서 내게 전화를 주셨다.

“간호대학 2006년도 내년 예산을 예결위원회에서 없앤 것 알고 계 시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에서 불이 번쩍이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마음으로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2006년도 내년 예산을 없앴다니요? 말도 안 돼요.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졸지에 학교예산을 없앨 수 있어요? 그럼 내년 신입생부터 입학생 선발을 중단하란 얘긴가요? 어떻게 당장 내년 예산을 없애다니요! 예산을 살리려면 어떻게 하면 예산을 살릴 수가 있을까요?” 내 정신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전 의원님의 말씀은 이미 끝난 일이라는 것이었다.“방망이로 이미 세 번 땅땅 두드리고 끝낸 일인데 어떻게 되돌릴 수가 있겠어요? 이제는 어렵지요.” “아니 그래도 당장 내년 예산은 살려놓고 그런 다음에 방안을 찾아 봐야지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내년 1년 예산만 살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애타게 말을 이어갔더니 전 의원님은 그나마 한 가지 방법을 일러주었다. “방법이 있다면 국회 예결위원장을 찾아가서 예산을 살려달라고 부탁해보는 수밖엔 없지만, 예결위원장이 예결위에서 방망이 두드리고 끝낸 안을 다시 살려 주겠다고 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그 한마디가 내게는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되어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김 학장한테 이 사실을 알리고 내일 당장 나와 함께 국회 예결위원장실을 찾아가자고 했다. 그 당시엔 정대철 대표께서 굿모닝시티 사건으로 형을 살고 계실 때라 다른 루트를 통해 정 형근 위원장 방문을 약속해두었다. 집에 와서는 내일 정형근 예결위원장을 만나 설득할 간단한 자료를 만들었다.
다음날 김 학장과 함께 국회 정형근 예결위원장실을 찾았다. 우리를 소개하고 내가 전체 이야기를 설명했다. 설득하는 일도 이전과 달리 학장이 아닌 위치라서 조심스럽게 생각되었다. 자칫하면 현직 학장을 제쳐두고 전임학장이 나서서 설치는 모양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것부터 설명이 필요했다. “저는 바로 직전까지 학장을 한 사람이고 현재 학장은 김애리 학장입니다.

그런데 김 학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전체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제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황당한 소식을 접하고 정말 절망감이 큽니다. 그동안 몇 번 우리 대학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만나서 설명하고 토론하여 설득할 시간과 기회가 있어 기사회생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인공호흡기마저 끊어버린 느낌이 듭니다.

국립의료원간호대학이 어떤 대학이고 국립대학으로서 국가에 어떤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간단한 문건을 작성해 왔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위원장님께서 우리 대학을 꼭 내년 예산부터 없애버려 문 닫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 인지, 한 번만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대학엔 재학생 외에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NCLEX-RN 과정에도 해외 취업을 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수백명 간호사가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갑자기 폐쇄되면 재학생, 동문, 교수들의 저항을 어찌 감당하려고 하십니까? 이들이 복지부와 교육부에 가서 데모라도 시작하는 날이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어려움도 만만찮을 텐데 왜 그리 험한 길을 택하려 하십니까? 저에게 일 년의 시간과 예산만 주세요.

내년 2006년도 예산만 도로 살려주신다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끄러운 일을 겪지 않고, 조용히 알아서 1년 안에 알아서 학교가 거듭날 수 있는 길을 찾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국회도, 정부 소관 부처도 그리고 학교도 모두 윈윈할 수 있습니다. 정 위원장님께서 어려우시겠지만 위원장님 직권으로라도 꼭 내년 예산만 살려주시면 학생과 동문 그리고 교수에게 폐교라는 불명예와 아픔 없이 반드시 1년 안에 위원장님과의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정 위원장님은 소리 없이 내 말을 듣고 있다 입을 열었다. “김 학장님이라고 했나요? 신임 학장님은 참 복도 많습니다. 전임학장이 이렇게 진심으로 학교를 위해 팔 걷고 현 학장을 돕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복이 많아서 이런 전임학장이 옆에 계신 것 같습니다. 전임학장님의 말씀에 충분히 공감하고 그것이 맞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없앤 예산을 살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건만은 내가 책임지고 내년 예산은 도로 되돌려 놓겠습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태산같이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벗어 던진 것 같았다.

이렇게 전재희 의원님의 빠른 정보제공과 정형근 위원장님의 크신 배려와 용단으로 학교는 또 한 번 죽음 직전의 국면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학장을 그만 둔 후에도 학교를 살리는 일은 여전히 내 일이었다.

이제 교수 그만하고 
동아TV 사장이나 하세요

2006년도 예산을 살려주겠다는 정 위원장님의 결단으로 당장 급한 불은 껐으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약속한 대로 1년 안에 대학이 갈 곳을 물색해서 가야 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은 일 이었다. NMC가 새로 거듭나는 험로를 개척해야 하는 중압감으로 머리는 가분수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김화중 장관님께서 외유에서 귀국했다며 만나자고 하셨다. 학장 발령 건으로 마음을 많이 써 주셨는데, 그 일이 잘되지 않고 미궁에 빠져버려 장관님 마음도 상한 듯 안타까워하셨다. 더 이상 내 학장 건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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