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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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목걸이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10.1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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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수필가

무더웠던 더위가 무색할 만큼 곳곳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옥천으로 가는 길은 이미 노랗게 익어 가는 감들이 옥천의 향수를 들려주고 있고,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감꽃 목걸이를 만들던 기억이 나서 차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시절 감나무 밑에 지천으로 흩어져 있는 감꽃을 주워 모아 풀줄기에 끼워 꽃목걸이를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귀한 보석으로 만든 값 비싼 목걸이는 아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꽃목걸이를 걸어주면서 수줍게 웃던 동네 오빠도 생각났다.

그때는 꽃목걸이에 담긴 풋풋하고 싱그러운 풋 사랑의 마음을 미처 알지 못했고, 지금에 와서 노랗게 익어 가는 감을 보면서 꽃잎 하나하나에 떠오르는 추억들이 아련하다. 감꽃이 핀 자리에는 다시 감이 열리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서 황금빛으로 제 몸의 색을 만들며 익어 가는 감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본다.

밤새 비바람이 불고난 뒤의 이른 아침, 소쿠리를 들고 밭에 나가면 파란 땡감이 떨어져 있었다. 약간 덜 익은 감들도 돌멩이 위에 떨어져 속살이 다 터져 나와 있었고 서둘러 익은 홍시 감들을 풀 섶에서 찾아 소쿠리 하나 가득 주워오면 식구들의 간식거리가 되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가지위에 달린 감들은 점점 붉은 빛을 띠면서 익어 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뒤뜰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홍시를 따서 내 입에 쏙 넣어 주었다. 아낌없이 주는 엄마의 사랑에 행복했지만 허기진 배를 감으로 채웠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흩어져 있는 감꽃을 한주먹 주워 바람에 날리면 꽃잎은 나비처럼 춤을 추는 듯 했다. 그러다 머리위에 떨어져 있는 감꽃을 장난스럽게 오빠 입에다 넣어주었던 유년의 기억들, 그런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어느덧 옥천에 도착했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나의 쉼터였던 종착역 마당에 서있던 잎이 무성하던 감나무가 나를 반겨 주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 홍시감은 되지 않았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감들을 바라보니 어쩜 그리도 아름다울까?

그때는 몰랐던 감나무 한그루가 가을을 담고 와서 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답게 보였다.

이제 곧 오랜 동면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아니면 무덥던 더위와 오랜 가뭄을 보란 듯이 이겨 내준 기특함 때문인지 가을빛에 내 마음도 행복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오던 길로 다시 차를 몰았다.

멀어져 가는 감나무를 보면서 마치 나이 들어가는 나를 닮은 것 같아 룸미러에 비친 얼굴을 만지며 허전한 마음을 안고 집에 오면서 감나무의 고마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감나무는 봄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많은 것을 선물로 주는 자연의 친구였다.

봄이면 연두 빛 새 잎으로 희망을 주기도 하고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지만 아름다운 꽃목걸이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여름에는 무성해진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강한 햇빛을 막아 주고 가을에는 맛있는 열매와 함께 단풍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겨울에는 까치밥 몇 알을 달고 모진 눈보라 곳에도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꼭 우리네 인생살이와 같았다.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 할 수 없이 힘이 들 때 아련한 추억들로 작은 웃음이라도 지울 수 있기에 가을에 만날 수 있는 선물이다.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뒤로 울긋불긋 단풍이 보이고 성질 급한 녀석은 벌써 낙엽이 되어 고개를 떨어뜨린다. 여기 저기 결실을 맺는 생명의 풍성함은 매년 주어 지는 가을의 상쾌한 공기에 가슴 속까지 가을빛으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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