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왜 한쪽으로만 부는가
상태바
바람은 왜 한쪽으로만 부는가
  • 배정옥 수필가
  • 승인 2024.02.29 1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직원이 함께 꾸려온 이미지를 오너 일가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 첫째 땅콩 회항, 둘째 뺑소니, 셋째 물벼락에 이어 그들의 어머니의 대단한 업적을 보자. 자식들의 거울이 되고 모범이 되어야 할 부모가 아니던가. 지표가 되어야 할 부모가 폭행, 욕설, 협박, 탈세에 불법 외국인 가사도우미까지, 확인된 것만도 수십 건이라 한다. 그의 수행 기사는 출근하기가 무섭다고 진술한 바 있다. 운전할 때 뒤에서 욕하고 화나면 때릴까 무서웠다고 퇴근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고 했다. 한진가 3대 재벌들의 만행은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그들 일가의 한층 가증되고 가식 된 ‘꼴갋 질’에 골이 깊어진 사원들의 집회로 이어진 기사들이 눈길을 끌었다. 얼마나 그 횡포의 치수가 심했으면 힘이 약한 사원들이 “갑질 총수 물러가라!”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라며 울부짖으며 거리로 뛰쳐나왔을까.


일찍이 조선 말기, 1894년(고종 31년) 7월 갑오경장을 통해 신분제도 등이 폐지된 지 이미 오래다. 천도교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고 외쳤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비굴하게 얻은 명예로 함부로 휘둘러대는 어줍잖은 인사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비단 대기업에만 ‘갑질 논쟁’이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다. 세 명만 모여도 가당치 않고 시원치도 않은 인사들의 그 횡포는 자행된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세먼지 탓인지 푸르고 청명해할 하늘은 잿빛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다 식은 찻잔을 기울이니 마음마저 시원치 않고 입맛까지도 씁쓸하다. 내 입가에서는 유치환 시인의 「깃발」이 읊조려 흘러나왔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만 안 그는.

누구나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삶은 때론 깊은 상처도 내고 때론 달콤한 행복감도 준다. 그리고 우리들을 상념의 굴레로 밀어 넣기도 한다. 산다는 생각보다 알 수 없는 고작 100년도 안 되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아무리 시대가 급속도로 변한다고 해도 사람만큼 쉽게 변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지만, 혼란스러워도 가치관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 본연의 선의와 때 묻지 않은 내면 순수의 불씨만은 꺼지지 않기만을.


이번 마중물을 통해 잘못 잡은 세력들을 바로잡고 처벌규정, 근절 제도 등을 마련하여 할 것이다. ‘갑질’도 모자라서 ‘꼴값 질’에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분개하는 힘없는 학생, 직장인들이 없는 건강한 사회가 언제쯤 될까?


오후가 되자 햇살이 내려앉았던 신록 잎이 반짝이며 푸르름을 더해 가고 있다. 하늘도 맑고 청명해진 듯하다. 
모쪼록 각각 이 시대 이 시간을 잘 통과해서 불안하고 어둡지 않은 밝은 행복한 사회를 기대해 볼 일이다.

사월의 메아리

“사랑해요, 엄마”
천지를 다 적시던 그 날, 환한 봄날 배꽃처럼 천진스러운 얼굴로 초록 잎새 펄럭이던 그들. 꽃봉오리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각자만의 빛깔로 빛이 되었을 그들의 부푼 꿈을 삼켜버렸던 그 날은 대답 없는 목멘 메아리가 되었다.


2014년 4월 16일,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은 수학여행의 설렘을 안고 세월호의 배에 올랐다. 일반인 등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에서 출발했다. 순조롭게 제주도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갈피를 못 잡고 몹시도 흔들렸다. 불안에 떨고 있는 그들을 향해 들려오는 말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뿐이었다. 긴박했던 순간도 잠시였었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했던 선장과 선원들만이 의무를 저버린 채 사람 아닌 얼굴로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을 했다. 그 뒤로 맹골수도 바다는 어둠과 침묵까지도 통째로 삼켜버렸다. 배가 침몰한 후 구조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들도 바다도 말이 없었다.


해마다 춘삼월이 되면 환한 봄빛은 즐거움을 주지만 늘 마음 한편이 먹먹했었다. 마음 편히 봄을 즐기지 못했다. 그해 봄, 그 다음해 봄, 또 그 다음해 봄을 보내며 마음의 주름살로 묵직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그렇게 3년이 흐른 2017년 3월 23일 드디어 세월호의 인양작업이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세월호가 침묵을 깼다. 녹슬고 긁혀 만신창이가 다 된 모습이 들어 올려졌다. 아픈 세월을 간직한 채 3년 만에 떠 오른 빛바랜 세월호를 보며 가족들과 많은 사람이 오열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이리도 쉽게 올라오는데 왜? 이제야 왜? 그동안 못 올렸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녹슬고 만신창이가 된 건 세월호만이 아니다.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 못한 채 상처입고 가슴엔 피멍이 들었을 이들을 보라. 차디찬 물속에서 살려달라며 울부짖었을 숱한 어린 넋들의 슬픔을 어떻게 어루만져 줄 것이며 어떻게 책임 질 수 있단 말인가. 자식을 잃고 친구를 잃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그들이 되어보라. 누구의 탓인지. 지난날들 내내 울컥거림이 따라다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