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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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으로
  • 박미련 작가
  • 승인 2024.02.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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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내려앉은 햇살이 차창에 부딪혀 미끄럼을 탄다. 뭉근한 가을 햇살에서 은은한 아로마 향이 난다. 로즈메리였다가 라벤더였다가. 긴장한 어깨가 스르륵 낮아지고 고개가 절로 뒤로 기운다. 따스하다. 이내 있을 불편한 만남도 걱정이 없다. 넉넉한 가을 품에 이대로 안겨 까무룩 쪽잠이라도 자고싶다.


차를 길 가장자리에 세워두고 창을 열었다. 바람이 가을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요란한 여름 태풍이 목숨 걸고 덤비는 청년의 깡이라면 가을바람은 소슬소슬 뒷걸음을 치며 시나브로 스며드는 중년의 무게감이다. 맵찬 기운을 겹겹이 동여맨 싸늘한 공기 방울이 훅 살갗을 파고든다. 시작도 끝도 밋밋한 바람이지만 가을바람은 여름을 달군 그 눅진한 바람이 아니다. 침묵한 듯 보이나 겨울을 인내하는 게 전령사답다. 해가 가고 없으면 본성이 더할테지. 오늘 밤에는 졸고있던 대지를 맵게 깨우고 소리 없이 수많은 겨울 이야기를 풀어놓을 테다. 바짝 긴장하여 나도 덩달아 옷매무시를 가다듬는다. 밤이 오기 전에 대비를 서둘러야겠다. 가을은 나에게 가는 좁은 길이다. 격랑 일던 여름을 질펀하게 즐기다가 나에게 머무는 시간이다. 찬 기운에 바짝 정신이 들고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하기 시작한다. 나뭇잎이 옷을 갈아입고 낙엽 되어 후둑후둑 떨어지면 잊고 산 지난날을 되짚어가며 손익계산서를 두드린다. 긴 호흡으로 숨 고르기를 해도 조급한 마음이 일렁일렁 손끝에 머문다. 그런데 가을은 낯익을 만하면 홀연히 떠나고 없다.

차가운 바람을 대동하고 치맛자락을 날리는가 하면 어느새 여름에 쓸리거나 겨울에 묻혀버린다. 가을이 오는 조짐에 잔뜩 부풀었는데 이번에도 그럴 모양이다.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한나절 삐죽 고개를 내밀었을 뿐. 간이역처럼 오고 가는 이가 당황하지 않게 손잡아 주고 슬며시 사라지는 것이 제 운명이기라도 한 듯. 벌써 아련하다.

그것이 머물러야 마침표를 찍을 일이 많은데 소리 소문 없이 가버리면 어쩌란 말인지. 언제부턴가 매듭짓지 못하고 쉼표를 달고 주위를 맴도는 일이 많아졌다. 홀연히 핑계를 대고 매번 다음 가을에 미뤄둔 탓이다. 그것은 자꾸 덜미를 잡고 늘어지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서둘러 나와버린 찝찝함이 다음 일 년을 괴롭히곤 할 텐데 걱정이다. 이번에는 단단히 마음을 먹어본다. 대충 얼버무려서라도 이름표를 달아줘야겠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매듭이 가을에 숨어 있어 다행인가. 매듭을 푸는 것은 가을이 가져오는 열쇠로만 열린다. 그런데 열심히 다듬어 온 열쇠가 어긋나는 꿈을 자주 꾼다. 이 매듭을 풀어야 닿고자 하는 곳이 가까워지는데, 어긋난 채 힘만 빼는 얄궂은 장면. 켜켜이 쌓아온 지난날이 의미 없는 순간이라니. 궤도 수정은 밑그림부터 다시 해야 하는데 낭패가 아닌가. 번번이 떠나버린 가을 때문이라고 어깃장을 놓곤 했다. 그래도 젊을 때는 어디서부터인들  거뜬했다. 반복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가을에 무감한 채 들떠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간도 힘도 그득하여 그 길 위에서 꿈을 꾸고 생을 재단해도 자신 있었다. 당장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지 않아도 바로잡을 힘이 샘솟았으니까. 


언제부턴가 겨울 문턱에 다다르면 이렇게 얼버무린 시간이 아쉬워 불면의 밤을 보낸다. 올해는 다행히 튼실한 열매가 열렸다. 딸이 짝을 만나 힘찬 출발선에 있다. 단단한 디딤돌 노릇도 즐거이 하며 딸을 응원해주는 호사도 누린다. 딸이 매 순간 함께할 짝을 만났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있을까. 같은 크기의 기쁨과 슬픔이라도 느끼는 강도는 기쁨에 비해 슬픔이 칠 할이 넘는다고 하니 혼자 감당하기에 세상은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기꺼이 서로의 어깨가 되고 그 어깨에 기대어 아픈 순간을 잘 이겨내길 소망한다. 


잊지 못할 경험도 했다. 마음이 바빠 이곳저곳으로 내달릴 때 뜬금없이 찾아온 문장과 낱말들의 향연, 한없이 쏟아지는 시상과 쓸거리들. 눈을 뜨면 달려오는 문장을 붙잡느라 핸드폰을 켜곤 했다. 새벽에 눈을 떠 신내림을 받은 듯 받아 적으며 행복해했던 지난 몇 개월.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하며 들떠 살았다. 모처럼 쏟아지는 단비를 온몸으로 받을 때처럼 글쓰기가 후련하고 즐거웠다.

글이 내 안에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속에서 뭔가가 자꾸 차올랐다. 한 해 한 해 가을에 집착하다 보니 내 인생도 어느새 가을이다. 쪼그라든 결산서가 가을이 가져다준 비보라 우기며 안달했던 지난날. 이제는 손익계산서에 마이너스가 선명해도 돌아보지 않으리라. 남은 날의 찬란함보다 보낸 날이 아쉬워 미련하게 굴었던 지난가을은 모두 잊으리라. 갈대가 바람을 밀어내지 않듯 오는 세월에 몸을 맡기고 훠이훠이 나부끼듯 살고 싶다. 세월 따라 나부끼다 보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재미가 의외의 곳에서 숨은 그림처럼 기다리고 있을지 또 누가 알겠는가.

새벽길

이른 새벽인데 슬그머니 나가시는 아버님, ‘별일 없겠지’ 하다가도 걱정이다. 선잠이 들락거리고 있는데, 다행히 얼마 안 되어 기척이 들린다. 드르륵, 문 여닫는 소리와 함께 이내 코골이가 요란하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기계처럼 일어나 또 장화를 신는다. 아버님의 시계는 다시 한낮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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