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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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아침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10.1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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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옥천지역인권센터 복지국장

새벽기도를 가기위해 대문을 여니 서늘한 공기가 뺨에 와 닿는다.

‘아! 계절이 바뀌는구나.’ 고개를들어 하늘을 보니 수정같이 맑은 별들이 반짝거리며 웃고 있다. 지난 여름 더위에 지쳐 하늘 볼 여유도 없이 지났는데 불쑥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가 지나도 더위는 물러갈 것 같지 않아 가을을 기다리는 설렘도 잊은 채 지냈는데 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온 것이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습관처럼 금구천을 걸었다. 찰찰찰 물소리가 경쾌하게 흐르고있다.

지난주 내린 비로 맑아진 많은 물들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힘있게 흘러간다. 선선한 바람에 풀들이 하늘하늘 손을 흔든다. 부지런한 왜가리, 백로, 물오리 떼가 섞여 여기저기 먹이를 찾아다닌다.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에 마음이 가볍지 않은 것은 태풍 차바로 인해 남부지역에 불어 닥친 수해 상황을 본 영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삼포시대니 오포시대니 하며 이나라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가고 있고, 북한 핵 문제며 사드배치 문제로 분분한 의견들이 마찰을 빚는 것을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게다가 지진까지 일어나 놀란 가슴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찾아온 태풍은 가을을 맞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 않았는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금구천을 걸으니 발걸음이 조금 무거워지고 있었다. “ 강아지 풀 좀봐....색이 변하고 있네...” 묵묵히 함께 걷던 남편의 말에 잡다한 생각에서 깨어나 보니 초록빛으로 살랑살랑 꼬리를 치듯 반겨주던 강아지풀이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강아지풀색이 변하는 것을 처음 보아 신기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피었던 꽃들이 다 지고 나무 잎사귀들도 노인들 얼굴에 핀 검버섯처럼 군데군데 거뭇거뭇 변해가고 있다. 화려했던 봄과 여름이 눈에 선했다. 빨강, 노랑꽃을 피우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들꽃들이 추레한 모습으로 힘겹게 서있었다.

‘가을이구나!’ 그러고 보니 100세 시대에 나도 가을 초입을 지나 쑤욱 들어 와 있다. 인생의 시간을 하루로 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나는 오후 노을이 질 무렵에 와 있는 것이다. 가을이 외롭고 쓸쓸하다고 하나 그런 가을이 있어 우린 차분히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기도하다.

분주한 여름날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들떠 살다가 이제 조용히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신선한 바람이 마음을 고요하게했다. 그리고 다시 추레해진 들꽃들을 보니 그들은 소중하게 씨앗들을 품고 있었다. 그 씨앗들을 맺기 위해 화려한 옷을 벗어던지고 행색이 누추해져가며 가슴에 품은 씨앗을 익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거둘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한 알의 씨앗을 땅에 떨어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들꽃도 그럴진대 사람인 나도 늘어나는 주름으로 한 숨을 쉴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희망의 씨를 익혀 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일체치하를 겪고 6.25 전쟁 속에 굶주림을 참아가며 후세대를 위해 희망의 씨를 뿌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에 우리가 이 만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통의 날들 속에서도 그 희망의 씨앗이 커가는 기쁨으로 살았을 것이다. 가을 초입에 들어온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품어야할 희망의 씨앗은 무엇인가?

길가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감잎들은 노랗게 변하고 있다. 여름내 열매를 맺기 위해 노랗게 변해가며 온 몸을 바친 결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다. 나의 젊음의 때에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며 살아왔다. 여기 인생의 가을을 맞으며 서 있음이 감사이고 행복이다.

매일매일 삶의 감사와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가난하고 힘들지만 살맛나는 세상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내 자녀들이 나를 통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생이란 돈과 명예를 위해 싸울 듯이 덤비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알기를 바란다. 내 인생에 맺어진 행복의 열매들을 보며 그 열매를 맺기 위한 얼굴의 주름이 부끄럽지 않는 가을이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소중하게 품은 행복의 씨앗들이 잘 뿌려지기를...

아! 오늘은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을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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