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동반 안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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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동반 안락사
  •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4.03.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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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침 신문에 네덜란드 전 총리 ‘드리스 판 아흐트’ 부부의 동반안락사 이야기가 특별히 눈에 띈다. 그는 93세를 살았다니 장수의 복도 타고났다. 둘은 70년간 해로했으며 총리는 평소 부인을 많이 사랑했다고 한다. 둘은 서로 손을 잡고 편안하게 세상을 함께 하직했다. 참 행복한 부부다. 일국의 총리까지 했고 장수의 복에 갈 때도 둘이 함께 손잡고 갔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란 생각이 든다. 

안락사, 말 그대로 편안히 죽는 걸 말한다. “얼마나 아프면 죽을까?” 

병에 걸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죽는 거 아닌가. 죽기도 무서운데 그 고통이라니……하지만 병마의 고통이 아무리 극심해도 사람은 편안하게 죽을 권리도 없다. 그걸 본인이 고스란히 감내하다 죽어야 한다. 본인이 서약서를 작성할 경우 연명의료를 거부할 권리는 우리나라에도 허용이 되지만 편안히 죽을 권리는 없다. 이걸 허용한 건 네덜란드를 포함 유럽의 몇 나라가 있지만 모든 국가들이 이렇게 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한쪽이라면 몰라도 부부동반안락사는 법이 허용을 한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요건을 충족하려면 부부가 동시에 병에 걸려 둘 다 전혀 살 가망이 없을 때 본인들이 원해야 할 텐데 이런 케이스가 흔치 않을 터이다. 또한 평소에 부부의 정이 돈독했던 사람이라야 똑같이 함께 갈 마음도 생기지 않겠는가. 평소 갈등이 심해 어느 한쪽이 거부한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금년에 연명의료거부의향서를 제출할 생각이다. 과다한 치료비 지출로 힘들어할 자식들을 위함이고 다 죽은 목숨 연장하기 싫어서다. 이게 있어야 자식들도 마음고생 없이 치료를 중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안락사를 허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왜 못하는가.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생각하는 풍조라도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인가. 쓸데없는 정쟁으로 국민들 피곤하게 하지 말고 이런 법이나 만들면 좋겠다. 이런 법 제정을 검토하는 정치인이라면 주저 없이 내 한 표를 보낼 것이다. 

부부동반안락사, 참으로 가슴에 스미는 게 많은 말이다. 한평생 동반자로 살며 자식 낳아 키우고 서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가는 길까지도 함께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는 이혼도 많이 하고 살다 보면 갈등도 참 많은 게 부부라는 관계이다. 항상 고운 정만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남보다 더한 갈등도 있을 수 있는 게 부부다. 다 극복하고 노후를 맞았다면 박수를 받을 일이다. 

젊어서는 갈등하던 게 나이를 많이 먹으면 다 봄눈 녹듯이 사라진다. 노후에 아침저녁 밥상을 마주하고 둘이 앉아 밥을 먹고 있다 보면 서로 연민의 정이 생기는 게 부부관계이다. 부인이 남편 밥상 차리기가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집안에 자기만 남았다고 생각해보라. 나이 들면 외로운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서로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사람이 혼자 살기는 너무 불편한 존재이다. 젊어서 경제력이 충분하다면 혼자 살아도 이런 걸 못 느낄 수도 있다. 부부관계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가치가 빛이 난다. 

특히 내가 많이 아파보면 내 옆에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다. 혼자라면 죽어도 옆집 사람도 모른다. 

늙어도 남녀가 각자 할 일이 따로 있다. 여자가 할 일이 있고 남자가 할 일이 있다. 사용하는 보일러에 이상이 생기면, 잠시도 없으면 못사는 전기에 이상이 생기면, 창문이 열고 닫는 데 불편이 있다면 이런 건 남자의 손길이 필요하다. 지금은 요리를 남자도 잘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혼자 살기엔 불편하도록 몸의 구조가 되어있다.

금슬 좋던 부부가 한쪽이 먼저 가면 한쪽도 바로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오래전 우리 이웃에 아주 금슬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완전 잉꼬부부였다. 건강해 뵈던 부인이 어느 날 세상을 떴다. 혼자 남은 남편은 아주 외로워 보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인을 너무 보고 싶다고 한단다. 그러더니 그분도 갑자기 돌아가셨다. 난 부부가 너무 사랑해서 부인이 먼저 가니 남편이 바로 뒤 따라갔다고 생각했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늙어서 가장 안 좋은 게 외로움이다. 부부가 늙어서 함께 있다면 일단은 그 부부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거기에 한날한시 함께 손잡고 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복은 없을 것 같다. 네덜란드 판 아흐트 전 총리는 일국의 총리까지 지내고 장수에다 갈 때도 부부가 다정하게 손잡고 함께 갔으니 세상 모든 복은 다 안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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