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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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을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10.2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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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순 수필가

어젯밤까지만 해도 폭풍이 섬을 삼킬 것 같았는데 날이 밝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푸른 하늘이 더욱 높게 보입니다.

눈에 익은 풍경인데도 더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오늘이 그러합니다. 맑은 햇살과 산뜻한 바람, 잔잔한 바다가 얼마나 평화로운지요. 가벼운 노래라도 부르고 싶습니다.

내 고향 검은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그곳에는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여명이 다 걷히기도 전인 이른 새벽에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큰 태풍이 지나갔다는 뉴스를 보시고 섬에 사는 딸이 걱정이 되셨나 봅니다.

“어떠냐?” “괜찮아요, 아버지” “그럼 됐어” 하시고는 제가 안부 인사를 드리기도 전에 서둘러 전화를 끊으십니다. 그 한마디 하시려고 새벽이 오길 기다리셨다가 전화를 하신 모양입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외딴섬에 살고 있는 딸이 안쓰러워서 그러셨을 겁니다. 말씀이 적은 아버지는 표현을 잘 않으시지만 누구보다 저를 아끼신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나오지만 가슴은 한없이 따듯합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주시는 응원이기에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가장 빛나는 시절에 태어나고 자란 저는 아버지의 젊었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빛바랜 사진들을 보며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여름엔 밀짚으로 여치집도 만들어 주시고 겨울엔 참새 잡는 덫을 눈밭에 놓아주시기도 하셨지요.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아버지는 퍽이나 낭만적이었던 같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제게 주신 많은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게 무엇인지 아세요?

어렸을 적, 우리는 여름방학만 되면 고모네 집에 놀러 가는 걸 큰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조카들을 무척이나 아끼시던 고모한테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그때 받은 사랑은 동생들에게 빼앗긴 엄마의 사랑을 대신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해가 뉘엿해지면 왜 그렇게 집 생각이 나고 엄마가 보고 싶던지 헛간에 몰래 숨어 울다가 들키기도 했습니다.

‘어서 방학이 끝나야 아버지가 데리러 올 텐데’ 하고 달력에 가위표를 그리며 아버지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인근마을에 벌초를 마치고 오신 아버지는 묵어가라는 고모의 청을 뒤로 하고 해거름에 길을 나서셨지요.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어린 딸의 마음을 알아차리셨기 때문일 겁니다. 십여 리가 넘는 길을 걸어 나와야 버스를 탈수 있었던 곳, 흙먼지가 보얗게 일어나는 신작로에서 잡아주시던 아버지의 손이 참으로 따듯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버지를 무척 어려워했었습니다. “아들, 아들” 하는 엄마의 영향으로 괜히 주눅이 들어 아버지한테 어리광 한번 제대로 못 부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첫 자식인데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을까요. 엄마 말에 의하면 딸들 중에서 제일 예뻤다는데……, 다만 드러내놓고 위하는 게 쑥스러워서 표현을 안 하셨던 것이었겠지요.

새소리도 무섭게 느껴지는 캄캄한 산길을 지날 때는 아버지의 등에 얼굴을 묻고 자는 척 하기도 했습니다. 땀에 젖은 아버지의 넓은 등과 별빛 초롱 했던 그 여름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는 소소한 일들이었을 테지만 저에게는 아무하고도 나누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한 것 들입니다. 동생들 누구도 갖지 못한 추억을 간직한 것만으로도 저의 유년의 꽃밭은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녹록지 않았을 부모님의 팔십년 세월, 제가 어찌 감히 그 애환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전쟁이 남긴 상흔, 어렵게 얻은 아들을 하늘로 보낸 슬픔조차 안으로 만삭이시던 우리 아버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자식들 걱정에 눈물 마를 날이 없으셨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다 내주고도 더 못줘서 가슴아파하시던 우리 부모님, 그 숭고한 삶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넓은 그늘로 품어주시던 부모님 덕분에 저희들 모두 모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작은 일에도 큰 상처를 받는 저는 부모님한테 늘 아픈 손가락이었지요. 그러나 이젠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채우려고만 하면 못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진다는 것도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모든 걸 잃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잊어 버려라, 그래야 산다.” 하시며 물기어린 눈으로 다독여 주시던 아버지가 계셔서 그 스산했던 계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처럼 제 아이들의 기댈 언덕이 되기 위해 심기일전 하겠습니다.

엊그제 시작인가 했던 가을이 어느새 깊어가고 있습니다. 늘 푸르기만 할 것 같았던 산과 들은 슬그머니 가을옷으로 갈아입고 따사로운 햇살 속으로 풍요로움이 가득합니다.

인생의 가을을 살아가고 계신 우리 아버지, 황금들녘에 오곡백과가 무르익듯 평생을 바쳐 지은 자식 농사로 아버지의 가을도 지금처럼 늘 풍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곧 아버지 생신이 돌아옵니다.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고 떠드는 걸 무엇보다 좋아 하시는 우리 아버지, 자식들에게 나눠줄 쌀과 양념거리를 손수 챙기시는 고마운 우리 아버지, 마음에 있어도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말 이제야 고백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 아버지가 저희 아버지여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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