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칼럼
꿈결 속에서 불러보는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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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칼럼
꿈결 속에서 불러보는 사모곡
  • 조숙제
    시인.수필가
  • 승인 2017.02.23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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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화장실이 나를 부른다. 창밖으론 정월 대보름달의 위용이 가히 장관이다. 동장군의 맹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하늘 높이 떠 만물을 밝히는 달빛의 자태가 성인의 경지답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으려는 듯 한 저 경지를 무엇이라 일러야 한단 말인가?

지용선생이 장수산 고요 속에서 읊조린,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 우는데, 눈과 밤이 종이보담 희다”

는 절구가 수긍이 가는 밤이다.

한밤중의 쓸데없는 사색도 일종의 병이 될까 두려워, 혼자서 빙그레 웃으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잠을 청해 본다. 설핏 잠이 든 것 같다.

그런데 이상도 하다. 소박하게 웃는 모습으로 다가오신다. 그렇게 애태워도 오시지 않던 어머님의 모습이 드리운다. 40년 전에 화살처럼 날아가신 어머님의 환영이 환하게 떠오른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기에 애타게 불렀건만 나타나지 않으시던 어머님의 모습이다. ‘웬일일까?’

오늘도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병든 이 자식의 안위가 안쓰러워서일까?

잠결 속에서도 긴장을 한다. 손마디에 어리는 정감에 불쑥 감정이 치솟는다. 아련했던 긴 세월의 터널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이팔청춘에 어머님을 잃고서 참으로 많이도 방황을 했다. 궁색한 살림에 쪼들리는 설움을 맨몸으로 지탱하면서 짐승처럼 발버둥 거렸다. 깊이 접하면 접할수록 서러움이 불경처럼 몰려든다.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극복을 해서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가? 다시 돌아가라 하면 나는 못 갈 것 같다.

어머님은 참 고우셨다. 궁색한 살림살이 이지만 불평 한마디 아니하시고, 늘 자신을 움직여 가족의 배를 채워 주셨다. 무덥던 뙤약볕 아래 김을 매면서 들려주신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 속엔 서러움이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그래도 늘 침착하셨고 긍정의 아이콘을 숙명처럼 매달고 사셨던 것 같다. 음식 솜씨가 깔끔해서 동내에서 큰일이 생기면 긍휼한 마음에, 늘 앞장을 서서 음식을 준비하셨고 저물도록 남들의 일을 흔쾌히 돌보시던 정경이 떠오른다. 자신은 늘 채식과 소식으로 일관했다.

절대로 육류는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늘 채식 위주의 식단이었다. 위장이 좋지를 못해서 소식하고서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늘 배를 발로 밟아 달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점심도 거르시고 종일 담배 밭에서 풀과 씨름을 하셨다. 헐레벌떡 달려온 아들이 가져온 물을 웃으면서 맛있게 잡수시던 그 모습이 유독 지워지지 않는 연유는 그 무엇일까?

가난이 이골에 박힌, 아니, 없이 살아 온 설움이 너무도 깊게 각인이 되어 육화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죽는 그 날까지 그렇게도 하고 싶어 하던, 자식의 공부 뒷바라지를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피눈물 같은 설움을 토하시던, 그 모습이 이제야 부각되어 그려지는 연유는 그 무엇일까?

죽어서도 놓을 수 없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의 교차점일까?

어머님! 한밤중에 어머님을 그리다가, 이 자식은 혼자서 이불 속에서 소리 없는 통곡으로 밤을 지새우는군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지어주신 그 새까만 보리밥의 힘으로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생사를 달리하면서도 자식에게 보내주신 그 한없는 음덕 덕분에 이렇게 충실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부를수록 힘이 되는 어머님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고이 간직하면서, 부끄럼 없는 자식으로 살겠습니다.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열심히 노력을 기울이다가, 저도 어머님이 놓으신 그 길을 따라서 가겠습니다. 그 응원의 목소리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머님, 저도 이제는 머릿결이 제법 백설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저에겐 어머님이 보내주신 충실한 일꾼들이 있습니다. 당신을 꼭 빼닮은 며느리와 손주 며느리가 있어 든든합니다. 매일 싱그러운 함박웃음을 안겨주는 증손녀는 재롱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복된 나날로 알알이 열매 맺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이시지요. 모두가 너무도 일찍, 저희 곁을 떠나신 어머님이 보내주신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늘 잊지 않고 감사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은 늘 그렇게 가까이에 존재하면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각인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너무도 가슴 아팠기에 오히려 잊을 수 없는 삶의 근원으로 존재하시는 어머님! 가난 속에서도 슬기롭게 삶을 터득하는 길을 가르쳐주신 것은 재물보다 커다란 보배가 아닐는지요. 잠을 자다가 말고, 오랜만에 찾아오신 어머님의 회상에 젖어, 실컷 울고 웃고 나니 전신에 생기가 도는군요. 역시 당신은 희망의 아이콘이십니다. 당신도 기쁘시죠?

이제 며칠 있으면 우수, 경칩입니다. 그동안 움츠렸던 꽃망울들이 따스한 햇볕을 머금고 화사한 봄노래를 부르겠지요. 이 아들도 어머님의 성원에 힘입어 힘차게 그 대열에 동참하겠습니다. 어머님! 이 아들을 믿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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