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목 져 울던 정지용의 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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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목 져 울던 정지용의 꾀꼬리
  • 김묘순
  • 승인 2017.07.0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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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수필가/시인,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비가 온종일 내린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영화를 보러 갈까 하다가 이내 뒷발질로 물리치고, 정지용의 작품을 들여다본다.

정지용의 시 감상이나 해설은 종종 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수필은 여간해서 읽어보기가 어렵다.

정지용은 서정, 서사, 희곡, 교훈적인 수필을 다양하게 발표하였다. 한 개인의 작품이 이렇게 수필의 특성을 고루 갖추고 있음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정지용의 수필 중 서정적 수필을 한 편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일상적인 경험과 사색, 자연에서 느낀 감정을 주관적으로 표현해 놓은 정지용의 서정적 수필 「꾀꼬리」를 읽어보자.

정지용의 서정적 정서를 독자들도 그대로 느껴보길 바라며 당시 표기법에 맞춰 적어본다.

 

꾀꼬리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온지 강진골 꾀꼬리 소리가 다른 듯하외다. 경도 꾀꼬리는 이른 봄 매화 필 무렵에 거진 전차길 옆에까지 내려와 울던 것인데 약간 수리목이 져 가지고 아담하게 굴리던 것이요, 서울 문밖 꾀꼬리는 아카시아 꽃 성히 피는 철 이른 여름에 잠깐 듣고 마는 것이나 이곳 꾀꼬리는 늦은 봄부터 여름이 다 가도 함동정월의 가야금 병창 <상사가>구절에서 간혹 이곳 꾀꼬리 사투리 같은 구절이 섞이어 들리는가 하옵니다. (중략) 꾀꼬리도 망령의 소리를 발하기도 하는 것이니 쪽쪽 찢는 듯이 개액객거리는 것은 저것은 표족한 처녀의 질투에서 나오는 발악에 가깝기도 합니다. (「꾀꼬리」,『조선일보』, 1938.)

 

「꾀꼬리」에서 정지용은 전남 강진, 김영랑의 집에 가서 듣는 꾀꼬리 소리와 경도 꾀꼬리, 서울 문밖 꾀꼬리 소리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황조(黃鳥)라고도 불리는 꾀꼬리는 부족국가 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정서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유리왕의 「황조가」에서 꾀꼬리는 객관적 상관물로 화자를 더욱더 이별의 정한에 사무치게 한다. 이와 같은 우리 문학에서의 전통적 꾀꼬리 상(像)은 정지용의 수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꾀꼬리라는 자연의 일부에게 가지는 작가의 섬세한 느낌의 수필적 자아가 서정으로 초대되는 것이리라. 수필적 자아(소설에서 서술자와 작가, 시에서 시적 자아인 화자와 작가는 동일 인물이 아님이 원칙이다. 서술자와 시적 자아인 화자는 작품 내부에서 작가나 시인과는 별도로 존재하게 되는 추상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수필의 서술자를 ‘수필적 자아’라 지칭해본다. 수필에서 수필적 자아는 수필을 쓰는 작가 자신임이 소설이나 시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 작가는 경도 꾀꼬리는 매화 필 무렵에 전차 길 옆까지 내려와 운다고 하였다.

경도는 교토로 그가 일본 동지사대학 시절을 보낸 곳이다. 이곳에서 꾀꼬리 소리는 작가에게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수리목 져 아담하게” 들렸을 것이다.

서울 문밖 꾀꼬리 소리는 아카시아가 무성히 피는 여름에 잠깐 들린다. 서울에서는 꾀꼬리가 ‘우는’ 것이 아니고 서정적 자아인 작가가 ‘듣는’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 정지용은 가족과 함께 서울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꾀꼬리는 울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잠깐만 소리를 들려주어도 되었을 것이다.

강진골 꾀꼬리는 봄부터 여름까지 운다. 한 놈이 여러 소리도 낸다. 명창의 가야금 병창소리가 만들어지고, 처녀의 질투와 같은 발악처럼 들린다고 하였다.

자연물로서 꾀꼬리는 울기도 하고, 소리를 내다가 말기도 하며, 울다가 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작가의 정한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꾀꼬리」라는 이 작품은 작품 외적 세계의 개입이 없다. 오로지 정지용은 꾀꼬리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만을 내세워 세계를 자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 그는 수필에서도 서정적 자아의 감흥과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의 문학적 줄기만큼 굵은 비가 여전히 수리목 져 울며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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