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다,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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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다, 잘 있거라
  • 김진묵 음악평론가
  • 승인 2018.10.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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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묵 음악평론가

서울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가는 기차는 대전에서 경부선, 호남선으로 나뉜다. 칙칙폭폭 기차가 다니던 시절, 대전역에서는 기관차를 바꾸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느라 정차시간이 길었다. 저녁 8시 45분에 서울을 출발한 ‘33 완행열차’는 자정이 지나 대전역에 들어온다. 기차는 0시 50분에 목포로 간다. 승객들은 플랫폼 포장마차의 가락국수를 마시고 다시 기차에 오른다. 기차가 떠날까봐 선채로 급히 국수를 먹었는데 기차는 떠날 줄 모른다. 당시 기차는 연발착이 잦았다. 아니 정해진 시각에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떠날 때는 기적도 없이 슬며시 움직인다. 레코드회사 영업사원 최치수가 지방 출장 중이었다. 레코드회사 영업사원은 출장이 잦다.

지방의 음반 도매상에서 수금도 하고 지역의 음악적 동향 파악을 위한 것. 어느 날 밤, 대전역 앞 숙소의 최치수는 역으로 가락국수를 한 그릇하러 갔다. 국수를 먹던 최치수의 눈에 한 쌍의 연인이 들어왔다. 최치수는 ‘헤어지는 연인’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보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최치수의 뇌에 번개가 스쳤다. 그는 숙소로 달려가 펜을 들었다. ‘붙잡아도 뿌리치고 나는 간다 잘 있거라’ 노랫말이 쓰여 졌다. 이튿날 돌아와 급히 작곡가 김부해에게 곡을 의뢰했다. 김부해는 세 시간 만에 곡을 썼다. 부루스를 잘 부르던 안정해가 취입을 했다. <대전부루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여기까지가 이 노래가 만들어진 이야기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1959년 어느 날 밤, 비 내리는 대전역. 플랫폼에는 남녀 한 쌍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서로를 바라본다. 기차가 들어오자 남자는 열차에 오른다. ‘대전발 0시 50분 목포행 완행열차가 곧 출발하겠습니다’ 안내방송에 이어 열차는 플랫폼을 빠져 나간다. 남자는 떠나고 여인은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비가 내리니 더욱 극적이지 아니한가.

대합실 청소를 막 끝낸 역무원의 눈에 어떤 장면이 포착됐다. 남녀 한 쌍이 두 손을 마주잡고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고 열차가 떠난 후에도 떠날 줄 모른다. 이 역무원이 후에 아세아레코드 사장이 된 최치수였다. 레코드회사 사장이 된 역무원은 오래전 기억을 뒤져 가사를 쓴다.

‘최치수가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대전역 승강장에서 쉬다가 얻은 감흥으로 썼다’ 또는 ‘대전 출장 중 달밤을 산책하다가 목격한 연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와 달밤의 산책길, 가락국수 먹으러 간 사람과 대합실을 청소한 역무원-.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맨 위의 사연은 내 기억 속에 있던 <대전부루스>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어디서 들은 것일까? 젊은 시절에 입력된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글을 쓰려고 인터넷 자료를 뒤지다가 그만 혼란 아니 절망에 빠지고 만 것이다.

검색창에 ‘잘 있거라 나는 간다’라고 쳐 넣으니 0.37초 만에 77,100개의 결과가 나왔다. ‘목포행 완행열차’는 약 7,350개 (0.33초), ‘대전부루스’라고 쳐넣으니 0.71초 만에 약 238,000개가 떴다. ‘대전블루스’는 약 633,000개 (0.49초). 비록 제대로 된 데이터는 아닐지언정 <대전부루스>가 ‘국민가요’임을 입증하는 결과가 아닐까. 일본 사람들도 좋아하니 일어로 써 넣으면 더욱 많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많은 자료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근거 없는 자료들이다. 누군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첫눈 내리는 플랫폼,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여인은 시한부 인생을…’ 우리 노래를 연구하는 음악평론가가 이럴 수는 없지 아니한가.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끈적끈적한 블루스(Blues) 리듬이 좋다. 어른들은 ‘부루스’라고 했다. 노랫말과 가락이 좋다. 우리네 ‘부루스’는 흑인이나 백인 블루스와는 맛이 다르다. 이 맛에 우리는 눈을 감고 열창하거나 색소폰을 목에 거는 것이다. 눈을 감는 것은 사마디(열반) 혹은 삿상에 들었기 때문. 눈으로 빛이 들어오면 가슴 속 빛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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