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겸손이 위대한 겸손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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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겸손이 위대한 겸손을 낳는다
  • 최성웅 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 승인 2018.11.0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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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웅 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일생을 하느님을 위해 살고서도 죽음에 이르러 겨우 하느님을 향하게 되었다고 말한 프란체스코 그와 같은 겸손이 프란체스코를 세기의 성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진실한 겸손이 가장 위대한 생을 낳는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겸손인가 어떻게 해야 겸손해 질 수 있는 가 돌이켜 볼 일이다. 자연은 위대하다. 자연의 그 위대함은 있는 모습 그대로에서 나온다. 자연은 인간과는 달리 아무것도 꾸미지 않는다. 있는 것을 없는 체 없는 것을 있는 체 추한 것을 아름답게 치장하거나 휘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때가 되면 싹이 트고 때가 되면 잎이 자라고 때가 되면 꽃이 핀다. 굳이 자신의 존재를 드려내려고 없는 향기를 추하게 풍기지도 않고 색깔을 천박하게 바꾸지도 않는다.

자연은 겸손하게 자신의 모습을 수긍 한다. 자연의 위대함은 그 소박한 겸손함에서 나온다. 겸손과 청빈의 대명사였던 성 프란체스코는 죽음에 임박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형제여 하느님을 향한 나의 의지는 이제 겨우 시작 일세” 일생을 하느님을 위해 살고서도 죽음에 이르러 겨우 하느님을 향하게 되었다고 말한 프란체스코 그와 같은 겸손이 가장 위대한 겸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나는 오늘 나무 한그루를 바라보면서 겸손에 대한 희미한 배움 한 가지를 얻었다.

어쩌면 겸손이란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남보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결코 겸손이 아니다. 그것은 위선이다. 남을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을 낮추어 허리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은 마치 한표를 얻기 위한 정치꾼과 같은 것이다. 남을 섬긴다는 것도 결코 겸손이 아니다. 우리에게 섬겨야 할 대상이 어디 있으며 우리가 섬김을 받아야 할 마큼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 겸손이란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일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자기모습을 과장 하거나 꾸미지 않고 미화시키거나 변명하지 않는 모습을 나무처럼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겸손이다. 공자가 말한 이 구절처럼 있는 그대로 내 보이는 모습이야 말로 겸손의 길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가 원하는 여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이 원하는 아이들로 만들려고 하고 자식은 부모를 자신이 원하는 부모로 만들려고 한다.

선생은 제자를 자신이 원하는 제자로 만들려고 하고 제자는 선생을. 상사는 부하직원을. 부하직원은 상사를. 정치가는 민중을. 민중은 정치가를. 작가는 독자를. 독자는 작가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변하려고 하기 전에 타인이 자신을 위해 먼저 변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것이 안 될 때는 분노하고 절망하며 괴로워한다. 우리는 너무나 일찍 자신을 먼저 탓하기 전에 남을 탓하는 버릇을 들였다.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기 전에 타인의 눈앞에서 자신을 가꾸는 법을 먼저 배웠다.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용기가 아닐까? 그리고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 하려는 마음과 노력이 있어야하고. 사랑 할 수 있기 위해선 겸손해야 하고 우리가 겸손해 질 수 있다면 우리는 보다 깊이 사랑 할 수 있을 것이다. 겸손이 그만큼 깊은 사람은 그 낮은 밑바닥 때문에 채워지는 사랑의 부피도 커질 것이다. 사랑은 밑바닥에서 차오를 때 가장 웅숭깊은 우물이 될 수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노래했다.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아슬 한 곳에서 내려오는 양/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양/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그리하여 밤이 되면 무거운 대지가 온 별들로부터 정적 속에 떨어집니다.//우리도 모두 떨어집니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집니다.//그대여 보시라 다른 것들을 만상이 떨어지는 것을//하지만 그 어느 한 분이 있어 이 낙하를 무한이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렇다 우리가 모두 낙하하여 가장 낮은 대지에서 세상을 위한 씨앗이 될 때 우리는 굳이 겸손이이란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겸손은 겸손이 없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낮은 자리로 돌아가 사랑이라는 작은 몸짓 하나를 배울 수 있다면 세상엔 겸손이란 단어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는 일이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유일한 길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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