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침유루(枕流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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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침유루(枕流樓)’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03.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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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정지용은 서재이름을 ‘침유루(枕流樓)’라고 짓겠다고 하였단다.
그러나 정지용은 끝내 그런 이름을 지닌 서재 하나 갖지 못하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1941년 7월에 『삼천리』지에서 문단에 영향력이 있는 문인들에게 'enquete'(의견조사를 위해 질문지를 작성, 회답을 구함)를 냈다. 정지용의 답변(『식민지시대의 문학연구』, 깊은샘, 1980, 90면)을 당시 표기 그대로 적어본다.

問 : 書室을 하나 가지게 되면 이름을 무엇이라 짓겠읍니까?
또는 현재 무엇이라 지으셨습니까?
答 : 枕流樓. 시내물 지줄거리는 向으로 벼개를 높이하고 자기 위하야.

정지용은 ‘枕流樓’라는 매우 동양적인 서실이름을 짓고자 한다고 대답한다. 그는 ‘시냇물 지줄거리는 방향으로 베개를 높이하고 자기’위함이라 하였다. 이는 두보의 「客夜」에 ‘高枕遠江聲’이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베개를 높이하고 먼 곳의 강물소리를 듣’는 다는 구절이다. 그러나 두보와의 영향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어둔다. 그리고 이런 답변을 하였던 해에 발표한 「비」를 감상하기로 한다.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 섰거니 하야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죵죵 다리 깟칠한
山새 걸음거리.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히
손가락 펴고.

멎은듯
새삼 돋는 비ㅅ낯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 -『백록담』, 1941, 28-29면.

「비」는 『문장』23호(1941. 1, 116-117면)에 발표되고 그 해 9월 문장사에서 발간한 『백록담』에 재수록하게 된다.
1연과 2연의 “돌에 / 그늘이 차고 //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에서 비가 오려는 징조를 보인다. 정지용은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분다.’라는 직설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즉 구름이 끼여 날씨가 음침한 상황에 소소리 바람까지 불어온다는 시적 상상력을 1, 2연에서처럼 형상화하고 있다.
3연과 4연의 “앞 섰거니 하야 /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 죵죵 다리 깟칠한 / 山새 걸음거리. //”에서 소소리 바람에 앞선 새가 그 바람에 꼬리가 위로 치날린다. 여기서 ‘깟칠한’은 ‘까칠하다’의 ‘윤기가 없고 매우 거칠다’거나 ‘부드럽지 못하고 매우 까다롭다’의 사전적 의미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애가 뭘 못 먹었는지 까칠해졌다”라는 예에서 보듯이 “마른 혹은 수척한”의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다리가 마른(가는)형태의 새가 비 올 조짐에 종종거리는 모습으로 해석함이 좋겠다.
5연과 6연에서는 “여울 지여 / 수척한 흰 물살, // 갈갈히 / 손가락 펴고. //”로 산골짜기 물이 흐르는 모습을 “수척한”, “손가락 펴고”라고 의인화하고 있다.
7연과 8연에서는 “멎은듯 / 새삼 돋는 비ㅅ낯 // 붉은 닢 닢 / 소란히 밟고 간다. //”라며 가을비가 “붉은 닢 닢”을 “소란히 밟고 간다.”고 비가 내리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다.
이렇게 깊은 산골짜기에 비가 오기 위한 준비과정과 실제 비가 내리는 모습을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하였던 정지용. 그의 섬세함과 천재적 감각이 원하였을 “枕流樓”. 그는 이루지 못한 소망을 안고 시를 노래하였다. 그 노래는 영원히 우리에게 회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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