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거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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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거 아세요?
  • 박영임 웃음꽃방 대표
  • 승인 2020.02.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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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임 웃음꽃방 대표
박영임 웃음꽃방 대표

안개 자욱한 새벽, 새들이 날아와 마당 한 켠에 상을 차렸습니다

아침 식사를 맛나게 하는 소리가 어린 시절 밥그릇 긁던 소리와 비슷해 살짝 웃음이 나네요.  닭은 아침을 여느라 꼬꼬꼬를 목청 드높여 목을 빼고 그 울림에 이웃 집 닭들도 따라 소리를 내지르고 꼴록새가 꼴록꼴록 울어 대고 뻐꾹새도 뻐꾹뻐꾹 연달아 올리네요.

부지런쟁이 농부는 경운기를 텅텅텅텅거리며 어디론가 가면서 여운을 남기는 첫 새벽입니다

그 날도 새벽에 저는 꽃 배달을 가야만 했지요. 밤새 아버지 옆에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손과 발을 주무르고 양말을 신겼다 벗겼다 하며 체온의 변화에 민감했지요. 젖먹이 어린아이를 떼어 놓듯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종종종 조심스럽게 움직였지요. 꽃을 싣고 궁촌재를 넘는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가던 길 멈춰 서서 한참을 울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아버지를 다시는 못 볼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던 거 같아요.

배달을 마치고 집에 와 보니 다행이도 안도에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지요. 여섯 시 반에 신부님하고 수녀님께서 다녀가셨다는 엄마의 말씀에 아버지는 마지막 영성체를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엄마는 아침밥을 챙겨주셨고 금방 돌아가실지도 모를 아버지 옆에서 밥 한술 입안에 넣는 것이 죄송했는데 그러면서도 자꾸자꾸 입안에 넣었잖아요.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모습도 아버지는 예뻐해 주셨으리라 생각해요.

정이 많은 아버지는 나눠 먹는 걸 참 좋아하셨지요. 어쩌다 용돈 드리면 금방 채뜨려서 막걸리, 사탕이랑 이런 것들을 사서 친구분들과 나눠 먹고 금새 다 써버리고 하셨어요. 그때 저 속상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 하신 거예요 아버지 하늘 나라 가시고 얼마 안 되어서 그 친구분들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참 아까운 양반 돌아 가셨어” 베푼 끝은 있나 봅니다. 지금도 간혹 길에서 만나면 아버지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도 그날처럼 비가 내리네요.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의 농부들은 바쁜 일손을 비로 인해 잠시 멈추고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부고에 많이들 와주셨지요.

아버지 그거 아세요?
아버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저의 작은 딸 방울이가 꿈을 꾸었어요. 낮잠을 자고 있던 아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거예요. 무서운 꿈이라도 꾸는 줄 알고 흔들어 깨웠어요. 잠에서 깬 한울이는 여전히 울고 있는 거예요. “무서운 꿈 꿨어? 아니 그럼 슬픈 꿈 꿨어?” 계속 울던 아이는 정신을 차렸는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하얀 버스 같은 것에 예쁜 장식이 되어 있고 그곳에 할아버지가 있고 난 이곳에 있고 그 버스에서 내려온 유리로 된 다리가 있었어, 난 할아버지한테 가려고 발을 올려놓으면 그 다리가 없어지는 거야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또 그 다리가 생겨서 또 발을 올려놓으면 또 사라지고 할아버지한테 갈 수가 없었어. 그런데 그 다리가 사라지면서 할아버지는 내게 손을 흔들며 높이 높이 가 버렸어” 어깨를 들썩이며 방울이가 이 꿈을 꾼 거예요.

아버지는 알고 계셨어요?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이 방울이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하는 날이었어요. 방학했다고 가방을 메고 왔잖아요. 저는 방울이가 그렇게 당당하고 의젓한 아이인 줄 처음으로 느꼈어요. “방울아 할아버지께 인사드려. 돌아가실 것 같아.” 방울이는 인사를 드 리고 얼른 집으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아버지 곁으로 왔잖아요. 무서워서 혼자서는 못 갈 줄 알았는데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었을까요 그 꿈 때문이었을까요. 그날 일기장에 잔칫집이라고 썼더라고요. 울 할아버지 잔칫날 사람들도 많이 오고 맛있는 음식도 많고 삐뚤빼뚤 그렇게 써 놓아서 제가 고쳐 쓰라고 했어요. 잔칫집이 아니고 초상집이라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방울이가 표현한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슬프지가 않았어요. 좋은 곳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는 생각에 슬프다는 생각보다는 가시는 길 편안하게 도와 드려야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큰집 언니는 르네브꽃 한 송이를 유리컵에 꽂고 친척과 신자분들이 방문하여 기도를 하고 언니는 성모님 망토에 아버지를 안아 가시는 길에 함께 해 달라 의탁을 하고 난 아버지의 발톱, 손톱을 예쁘게 정리하고 양치를 하려는데 제 손가락은 살짝 깨물고 엄마 손가락은 꽉 깨무신 거 기억나세요? 돌아가실 때 기운 없을까 봐 미숫가루 물을 수저로 조금씩 넣어 드렸는데 치아 사이사이에 끼어 틀니를 빼서 닦아드리려 했잖아요. 제가 빼려 할 때와 엄마가 빼려 할 때 아버지의 표현이 달랐잖아요.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딸한테는 살살 아내한테는. 애정 어린 아버지의 마지막 표현을 뒤로하고 꺼져가는 촛불처럼 아버지의 숨결은 서서히 서쪽 하늘의 노을처럼 잔잔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고 우리들 곁을 떠나셨지요. 가시는 길에 방해될까 봐 울 수도 없고 자식 걱정 아내 걱정에 돌아보다 소금 기둥 될까 봐 아무도 울 수가 없었어요. 오빠는 아버지의 눈을 가리며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고 언니와 동생 그리고 엄마와 아이들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삶의 여행을 마치셨지요. 아버지 제 말 들으셨어요? 사랑한다는, 예쁘게 키워줘서 감사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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