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 프란스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비뚜로 선 장명등.
카페 프란스에 가자.
이 놈은 루바슈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 흐늑이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자.
이 놈의 머리는 비뚤은 능금.
또 한 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오오 패롯(앵무) 서방! 굿 이브닝!’
‘굿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 아가씨는 이 밤에도
경사 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려!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 학조; 1호 (1926 .6)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정지용(25) 시인이 일본 유학 시절인 1926년 조선인 유학생 문예지라는 공식 지면에 발표한 최초의 모국어 시이자 한국 현대시 태동의 전조로 평가되고 있다. 교토에서 겪었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 배경은 프랑스풍의 카페이다.
한국인 유학생들이‘프란스’라는 이름의 카페에 드나들며 술을 마시던 장면을 옮겨 놓고 있다. 시적 공간은 ‘카페프란스’ 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과 밤거리의 풍경. 그리고 카페의 실내 풍경이다. 외래어와 화려한 비유로 이국적인 소재를 동원하며 근대 문명의 상징을 드러내는데, 전체적으로 차갑고 싸늘한 이미지로 묘사된다.
이 시는 ‘카페’ 라는 폐쇄된 현실 공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나라 잃은 가난한 유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외로움과 슬픔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그 안에서 테이블에 엎드려 고통스러워하고 고독과 비애로 흐느끼는 지식인 청년의 감정을 통해 시인의 반일정서와 함께 이에 맞서 투쟁하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자학과 자기비판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