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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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48)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3.31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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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을 한 번씩 당할 때마다 나는 십년감수를 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다음 해 98년 IMF 구제금융사태가 닥치자 온 나라가 망할 듯이 대기업과 은행들이 무너지며 곳곳에서 기업들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나라 전체가 피할 수 없는 구조조정 국면에 직면하였고 정부는 부처별로 의무적으로 구조조정 성과를 내라고 독촉했다. 복지부에서 볼 때 가장 손쉽게 구조조정이 가능한 기관으로 1순위가 또 우리 대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또 다시 기획예산처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정신이 아찔했다. 사실은 한두 번도 아니고 지겹고 끔찍했다. 구조 조정 분위기만 형성되면 약방의 감초처럼 NMC 간호대학은 복지부의 밥이었기 때문이다.

98년 IMF의 구조조정 바람은 워낙 거센 국가적 재난사태라서 웬만해서는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나는 사회적 분위기가 분위기니 만큼 이 국가적 상황에 맞는 논리적, 실리적 명분이 없는 일방적인 주장만으로는 IMF 사태 속에서의 구조조정은 웬만해서는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학교보호를 위한 하나의 방패로 개설한 프로그램이 NCLEX-RN이었다. 나는 우리대학 폐교 반박 논리로 기존 2차에 걸쳐 작성했던, 우리 NMC의 역사적 상징성, 커리큘럼의 우수성, 수재급 학생의 탁월성, 국가의료재난사태에서의 기여도에 NCLEX-RN 프로그램의 국가적 기여도와 대학 재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점, 국내 대학으로는 유일한 미국 간호사 면허 취득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정착하고 있는 대학이라는 점, 무엇보다도 IMF로 인해 중소병원의 줄도산 으로 간호사 취업률이 거의 90% 이상 상회하던 것이 43%로 급락하여 간호대학 졸업자들의 취업위기를 NCLEX-RN을 우리 대학에서 운영하여 미국과 호주 등으로 해외 취업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국가적인 취업 문제를 NMC가 맡아 IMF 위기 극복에 공헌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골자로 문서를 작성하여 복지부에도 보내고 기획예산처를 찾았다.

나 혼자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하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정 교수를 동행해서 모든 사건의 전말과 현장을 함께 공유했다. 또 리더는 항상 다음 세대의 리더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책무라 생각되어 백문불여일견이니, 내가 하는 일을 옆에서 빠짐없이 보고 들음으로써 터득하는 기회와 지혜를 주고자 하는 내 깊은 뜻도 있었다. 또 한 가지는 천하의 길치인 내 옆에 길눈에 뛰어난 정 교수와의 동행은 언제나 내게 심리적 편안함을 주었다.

예산처 담당 과장, 서기관, 사무관, 주무관과 마주 앉아 작성한 문서를 나눠주었다. 저쪽은 IMF라는 국가적 재난사태 속에서 한 기관이라도 구조조정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사명감으로 결기에 차 있었고, 나는 꼭 40년 역사를 지닌 국립대학의 교수로서 반드시 구조조정을 피해 학교를 지켜내야 하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선 입장에서 불꽃 튀는 토론이 예상되었다. 분명 오늘은 전과는 달리 승자와 패자로 갈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내게는 NMC 폐교라는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우리 학생들의 빼앗긴 선택과 미래의 아픔으로 울부짖는 모습과 동문들의 지금까지 지켜온 자존감의 붕괴, 교수들의 생존권 박탈로 인한 절망과 좌절하는 여러 모습들이 그려졌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예산처 공무원들의 주장을 완전히 번복시켜야 했다. 며칠간 밤새 고민했던 우리 대학 존립의 필요성, 즉 폐교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 나갔다.

폐교를 강행하려는 이유는 국가 재정 긴축문제였다. 바로 이 핵심 대목에 대한 타당성 있는 반박근거가 다행히 준비되어 있었다. 95, 97년에 경험한 폐교 문제에 대비하여 98년 IMF가 터지자 우리 대학에 NCLEX-RN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대학 재정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IMF로 인한 간호사의 저조한 취업을 미국 해외 취업으로 전환하여 전국적으로 많은 간호사들을 미국에 취업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학이라는 충분하고 타당성 있는 논리가 있었다.

내 설명을 들은 기획예산처 과장은 폐교하면 NCLEX-RN을 운영할 수 없을 테니 서울에 국립대학은 서울대 밖에 없으니, 서울대 간호대학과 통폐합하는 방안도 있다며 서울대와의 통폐합을 제안했다. 사실 누가 들어도 서울대와 통폐합은 우리 대학을 업그레이드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아마도 반대하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향해 두 가지 이유로 반대했다.

첫째, 서울대와의 통폐합은 근사한 제안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용적으로는 NMC가 서울대 간호대학에 흡수되는 것으로 사실상 폐교와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NMC가 아무리 훌륭한 전통과 교육과정의 탁월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회 통념상 NMC는 거대한 서울대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이기에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다른 이유는 국내 최고의 서울대는 대표적인 연구중심의 대학이므로 체제상 간호대학에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 교육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할 시스템 구축이 어려움을 내세워 또 다른 반대 논리를 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머리 속에는 교수들의 반발이 눈에 보였다. 지난번 삼성과의 통폐합 건에 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NMC는 이렇게 비즈니스 모델의 해외 취업을 위한 NCLEX- RN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운영하는 대학으로서 IMF를 맞아 다른 어느대학보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대학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NMC는 절대 폐교 수순에 들어가면 안 된다, 우리 대학만 그대로 존립시킨다면 교수정원을 구조조정하는 차원에서 이 자리에서 나부터 사표를 쓰겠다고 호소했다. 과장, 서기관, 사무관, 주무관 네 사람은 내 말을 경청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표정과 태도의 변화가 생김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담당 K 사무관이 과장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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