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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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옷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2.07.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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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자혼(子婚)이 있어 예식장에 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장내가 훤하다. 양가 어머니들의 한복으로 인해 하객들의 시선이 온통 그쪽으로 쏠려 있다. 평생을 한복과 더불어 살아왔지만 오늘따라 한복이 내 눈을 현혹하며 새롭게 다가온다. 

귀한 자리, 예를 갖춰야 할 자리, 특별한 자리에는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꼭 챙겨 입는 미풍양속에서 은은한 한국의 미가 풍기는 한복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 배냇저고리로 삶을 시작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같다. 하지만 돌이 되면서부터는 옷차림에서 은연 중에 신분과 빈부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결혼을 할 때면 신분의 격차없이 궁중에서나 입었을 만한 예쁜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하늘에서 선남선녀가 하강이라도 한 것처럼 아름답고 우아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선이 곱고 섬세하며 단아하면서 기품이 넘치는 옷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 아니면 자랑을 했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만드는 한복의 홍보차원에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이 시간 나를 감동시킨 저 한복은 여태까지 보았던 한복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어느 나라 어떤 옷이 저토록 곱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한복을 하며 생활하기에만 급급했지 한복의 종류가 몇 가지나 되는지도 모르고 만들었다. 궁중옷, 예복, 평상복, 어우동, 수의 옷, 그밖에도 많은 옷들이 있지만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다. 

우리 옷은 보통 옷에서 볼 수 없는 곱고 화려한 색상이 특징이다. 한복이 아닌 다른 옷에다 그런 물감을 들였다면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한다고 아무도 선호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입는 사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어쩌면 그렇게도 적절하게 잘 맞는 역할을 해내는지 한복이란 이름에 한이 서려있는 듯 하기도 하다.

구중궁궐 높고 깊은 곳에서 상상을 초월할 만큼 의미있는 문양과 화려한 옷 속에 가려져 본래의 사람을 잃어버리고 가면을 쓴 것처럼 살아가는 지존들의 삶이 언감생심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겹겹이 껴입고 머리에 쓴 무게만큼이나 힘든 세월을 살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한 것처럼 뒤로 들어도 듣지 못한 것같이 벽에도 귀가 있다며 할 말이 있어도 입술을 깨물며 참아야 하는 지체 높은 사람들의 삶이 가여울 때도 있다. 섣부른 몸짓 하나에도 피비린내를 일으키며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잔인한 칼바람이 수시로 불어대는 궁궐이다. 모두가 그 화려한 옷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헛기침 소리가 담장을 넘고 근엄한 자태를 뽐내는 대갓집 바깥 주인 도포 자락은 부귀영화를 거머쥐기 위해 이리저리 철새처럼 날아다니며 정치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듯하게 일자로 가르마를 탄 곱고 단아한 머리만큼이나 꼿꼿하고 도도한 안주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들의 치맛자락은 언제나 휘파람 소리를 내며 서슬 퍼런 날을 세워 아랫것들을 설설 기게 하는 폭풍을 일으킨다.

기생들의 홱 돌려 입은 치맛바람에 세상의 정신 나간 남정네들의 기방 바람은 가산을 탕진하는 말 그대로 바람도 있다. 

그러나 논개나 황진이처럼 여염집 아낙네들이 생각할 수 없는 곧은 절개를 지키며 나라를 구하고 애국하는 바람도 있다. 하얀 한복을 즐겨 입던 우리 조상들이 힘들게 살아온 발자취에는 애환이 서려 있는 듯하다. 초라하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평생 주인들의 눈치를 보며 한 서린 삶을 살아온 이들의 눈물 바람도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의 모시옷은 누가 입든지 입기만 하면 잠자리가 되어 맑고 푸른 하늘로 사뿐히 날아갈 것만 같다. 선이 곱고 우아한 우리 옷의 깃과 섶의 섬세함은 금방이라도 피어날 것 같은 목련을 닮은 듯하다. 도련과 배려의 날렵함은 흡사 학의 날개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의 옷, 미세한 바람에도 한들거리다 못해 너울너울 춤을 출 것만 같다. 어떤 옷에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 옷, 이런 대단한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부심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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