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주머니에 구멍이 났어요
상태바
기억의 주머니에 구멍이 났어요
  • 배정옥 수필가
  • 승인 2024.05.23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 퇴근길에 외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를 데려왔다. 조수석에 앉은 손녀는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했다.

그리고는 내 표정을 살핀다. 내가 집으로 가기 전 들리는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슈퍼를 가든지 제과점을 들려 손녀의 기분에 맞춰 먹고 싶은 것을 사주기 때문이다. 

늘 가는 코스이지만 간혹 집에 먹을 것을 미리 사 놓는 경우도 잇다. 그날도 그런 경우라서 슈퍼를 그냥 지나쳐 오고 있었다. 손녀는 약간 샐쭉한 표정으로 오는 길 내낸 쫑알쫑알하다가 “할머니! 할머니 기억의 주머니에 구멍이 났어요?” 다섯 살 난 아이의 말치고는 어이없는 표현에 깜짝 놀라 반문을 했다. 손녀는 입을 삐쭉이며 금방이라도 울어버린 표정이다. 속상하다는 어조로 그것도 또박또박 천천히 상기시켜 주었다.

“할머니 기억의 주머니에 구멍이 났냐고요?” “그러니깐 기억들이 술렁술렁 빠져나갔기 때문에 매일매일 까먹잖아요.”하였다.

요즘 들어 손녀는 부쩍 의사 표현도 확실해졌고 요구도 많아졌다. 그리고 옛말에 미운 다섯 살이라 했던가. 말도 잘 안 듣고 눈치를 보며 유리한 쪽으로 어른들을 끌고 가곤 하였다. 상상도 못 햇던 말을 해서 놀라고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해프닝이라 할까?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근무지로 오전에 친구가 왔다. 차애 있는 물건을 전해 주어야 하는데 차 열쇠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가방에 내용물을 두 번을 쏟아보고 주머니를 몇 번을 찾아도 열쇠는 보이질 않았다. 아침부터 나의 이동 노선을 머릿속으로 생각을 떠올리며 재구성해 보았다.

출근해서 처음 앉았던 그 자리에 있었다. 잠시였지만 머릿속이 하얗고 그 당황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생각해보니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이던가 내 기억을 주워 모으고 하나씩 퍼즐 맞추듯 맞춰 보는 것이 일상이 된지 오래된 것 같다.

젊었을 땐 무엇이든 세 번만 읽으면 기억할 정도였다.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암기력도 좋았다. 그런 내가 정말로 손녀 말대로 기억의 주머니에 구멍이 난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금방 한 것도 기억나지 않을 리가 없다. 어떤 때는 구구단도 내 핸드폰 번호도 빨리 대답 못하고 당황을 했던 적도 있었다. 머릿속은 그려지는데 단어는 생각이 나질 않아 정정 긍긍 할 때가 많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고 깜박깜박 한다는걸 나 스스로가 느끼고 깨닫고 있었다. 그날 손녀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어넘기긴 하였지만,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치매에 대해 인터넷을 참고해 보았다.

사회가 고령화됨에 따라 노인 연령에 생기는 질환이나 장애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억력 장애와 치매다. 기억력 감퇴는 대부분 노화에서 오는 노인성 질환을 들수 있다.

전문가들은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퇴행성 뇌질환에 의한 치매(알츠하이머)는 초기의 변화가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아서 정확한 발병 시기를 알기 어렵다. 신체적 상해 또는 환자의 삶에서의 중대한 사건과 관련하여 급작스러운 장애의 출현이 있는 것처럼 병력에도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주의 깊게 되물어보면 치매의 증상이 이미 있었으나 주위에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내올 수 있다.  어떤 계기를 통하여 갑자기 환자 자신이나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러한 문제점과 아울러 가족이나 일반인의 치매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부족으로 인하여 치매의 초기 증상 자체를 정상 노화 현상으로 간주하여 이를 간과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전문의가 진단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치매의 초기 증상인 기억력의 감퇴 및 인격의 변화 현상이 우울증 등으로 오인되기도 하여 치매의 진단이 지연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치매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지연되어 치매의 만성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대의 문명과 의학이 발달한 지 오래이지 않던가. 예전보다 수명이 길어졌다. 대중매체나 전문가들은 백세시대라고 외친다. 이 장수 시대에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치매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병은 초기의 중요성이다. 열심히 운동과 건전한 마음가짐으로 정신 줄 꽉 붙들고 건강한 노후를 맞이하리라.

며칠 전 우편물 중 건강검진 대상자 안내문을 찾았다. 빠른 시일 안에 전문의 검사를 받아 봐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