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빠요 농한기에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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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빠요 농한기에 해 주세요”
  • 박현진기자
  • 승인 2018.04.26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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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 단 2~3명 뿐 한계 드러내
농사철 피해 농한기 집중교육 대안
‘찾아가는 한국어 그룹수업’을 경청하고 있는 면 지역 결혼이주여성들.

4월 초순. 때 이른 초여름 날씨에 후끈 달아오른 지열이 만만찮다. 뙤약볕을 피해 들어간 면사무소 소회의실에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 A씨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수업시간이 20분이나 지났는데 학생들은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A씨는 “원래 여섯 명 정도 되는데 오늘은 두 명밖에 못 올 것 같다”고 했다. 요즘이 깻잎 따는 시즌이라는 것.
함께 있던 면 직원이 “이곳 결혼이주여성들이 대부분 깻잎 농사를 짓는데 깻잎은 제때를 놓치면 시들어 상품가치가 떨어지므로 어쩔 수가 없다”고 거든다. 두 명은 깻잎 때문에, 한명은 필리핀 사는 친정엄마가 오셔서, 또 한 명은 아이가 아파서 못 온다고 했다.

A씨는 “다음 주에는 이웃 동네 사는 또 다른 학생을 태워 올 것이므로 한 명이 더 는다”고 했다. ‘수업이 되겠나’ 의구심이 들려는 순간 앳된 모습의 두 학생이 들어오며 밝은 웃음으로 인사한다. 동갑내기에 아이도 똑같이 셋이라는 두 학생은 서툰 발음을 쑥스러워하면서도 즐거워했고, 틀렸다고 지적을 당해도 개의치 않고 다시 한번 ‘제대로’ 해내고서는 한없이 뿌듯해했다.

한 학생은 “한국어를 좀 더 일찍 배웠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그러질 못했다”며 “새로운 단어나 표현 하나 배워서 남편의 말에 멋지게 응수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한국어 배우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없는 타국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게 셋만의 수업이 시작됐다.
열흘쯤 뒤 또 다른 지역의 면사무소 소회의실을 찾은 날은 가뭄을 해소할 만한 굵직한 비가 연이틀 내리면서 쌀쌀하기까지 했다.

수업시간이 꽤 지나서야 한 학생을 태운 강사의 차가 장대비 속을 뚫고 달려왔다. 이곳 강사 B씨는 “이렇게 궂은 날은 학생들이 거의 못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옥천읍에서부터 함께 온 한 학생과 좀 늦게 올 두 명이 오늘 수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출석을 기대하고 여기저기 태우러 가서야 ‘사정상 결석’을 연락받는 바람에 늦어진 것. 강사가 수업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학생들 사정 챙기고 돌보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며 아쉬워한다.
반면, 동행한 학생은 “일주일에 두 번 진행되는 다문화센터 수업도 듣고 국적취득교육도 받고 여기 면까지 따라와 수업을 듣고 있다”며 “그렇게 해도 아직 한국어 구사가 서툴러 걱정”이라고 열성을 보인다.

늦게 온 지각생 중 하나는 다섯 아이 중 ‘맡길 곳이 없는’ 막내를 업고 왔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한국어 수업을 빠지지 않았다는 학생 엄마는 “막내를 늘 데리고 와야만 해서 집중도 안 되고 진도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 수업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점점 커가는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려면 아이들보다 실력이 나아야 한다는 것. 이곳에선 그렇게 넷만의 수업이 끝났다.

현재 옥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주민에겐 최대 장벽이라는 ‘한국어’ 교육과정만 해도 장소와 범주를 달리 한 다양한 교육이 시행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센터(읍내) 방문이 어려운 면 지역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찾아가는 한국어 그룹수업’이다.

그러나 앞선 수업 현장에서도 나타났듯이 단 한 사람의 이주여성도 등한시하지 않겠다는 ‘세심한 배려’와는 달리 참여율과 효율성 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참여 학생들의 배움을 향한 열의와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서로 의지하며 공존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고무적이나, 시간제 임금을 받는 강사가 몇 안 되는 학생들을 일일이 인솔하러 다닌다거나 학생들이 농사철 바쁜 일감과 육아로 인해 참여율이 저조한 점 등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학생이 너무 많아도 판이한 수준의 격차로 인해 수업 진도에 어려움이 있지만 지금처럼 절반이 채 안 되는 출석률도 문제가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일부 참여자들은 “현행 4월~11월까지 진행되는 수업시간을 7~8월이나 12~이듬해 3월 등의 농한기 때로 집중시키면 시간의 여유가 있는 학생 각자 수업장소로 찾아오기도 수월하고 참여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 관계자는 “요즘은 ‘다문화’라는 단어가 어색할 만큼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나 인식이 많이 개선돼 동등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공존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주여성들에게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며 참여율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시도해 왔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강사의 일정과 센터의 프로그램이 중첩되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사업 취지에 걸맞게 효율성 있는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해 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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