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역사를 새로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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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역사를 새로 세우다
  • 도복희기자
  • 승인 2018.05.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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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토사연구회, 삼국시대 산성 표지석 설치
옥천향토사연구회 회원들이 삼거리산성 표지석을 설치했다.

(사)옥천향토사연구회(회장 이재하)에서는 10여 년전부터 지속적으로 옥천군과 함께 산성 표지석 설치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까지 37개소에 설치 됐고 올해 4개(독수리산성, 지양리산성, 삼거리산성, 답양리 토성)를 추가 설치 총 41곳에 표지석을 세운 것.

옥천에는 보고된 삼국시대 산성만 46개가 있다. 한국 제1삼국시대 산성군으로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이며 요충지로 나·제 간 격전지이기도 했다. 금강과 서화천을 경계로 신라와 백제의 산성이 전국에서 제일 많이 분포돼 있다.
특히 옥천군은 서기 554년 7월에 옥천군 일원에서 신라, 백제, 각각의 군사 3만 명이 대전투를 벌인 관산성 격전지로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향토사연구회 이재하 회장은 “표지석 설치는 옥천의 문화와 역사뿐 아니라 삼국시대 국방 유적을 알려 옥천이 얼마나 유서 깊은 지역인지를 알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고 전했다.
한편 옥천향토전시관 전순표 관장은 “문화의 패턴이 힐링과 역사인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러한 대중적 관심에 도움을 주기 위해 표지석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올해 세워진 4곳의 표지석 내용이다.

독수리산성은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 귀절사 뒤편 식장산 해발 587m 정상에 백제시대에 축성된 석축산성이다. 둘레는 약 300m의 석성으로 남쪽 사면만 약간 남아 있고 장대지는 산성 중앙에 비교적 넓은 곳에 위치한다. 사방으로 조망이 좋아, 삼국시대에 옥천군은 동쪽의 서화천을 경계로 나제간의 국경지대로 관산성전투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산성으로 추정된다. 백제군이 동쪽의 옥천 관산성, 동평산성과 자모리 장고개 등 신라군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방비하기 위해 조성한 산성으로 동서남북으로 조망이 좋다.

지양리산성은 옥천군 동이면 지양리와 청마리 경계인 해발 495m봉 정상의 긴 능선 가장 높은 봉우리에 축성됐다. 토석 혼축으로 성축된 둘레가 약 300m인 테뫼형으로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윤곽만 뚜렷하며 장대지나 망대지로 보이는 지형이 5곳 있다.
이 산성에서 옥천분지는 물론 이원, 안내, 군서, 군북, 안내, 안남, 청성면, 식장산 등 동서남북으로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남동쪽으로 연이은 좌우 능선에는 옥천읍-청산-상주를 잇는 말티재와 청동재가 위치해 군사상 신라의 중요한 교통로를 방비하는 산성으로 추정된다. 

삼거리산성은 옥천읍 삼양리 해발 142m의 작은 산, 구릉에 위치한 토성이며 둘레가 약 300m인 테뫼형 산성으로 삼국시대에 축조됐다.
동서 능선을 따라 흙으로 토성이 축조되었고 윤곽만 뚜렷하며 내부의 평탄한 대지는 병영지로 보이며 성안에서 일부 토기편이 발견된다.
이곳 삼양리 삼거리는 서화천과 금구천이 합류하는 협곡으로 양측 면에 관산성으로 비정되는 삼성산성과 북편으로 서산성 사이 교통 요지로 읍성으로 추정되는 삼양리 토성을 방비하기 위해 축성됐다.
답양리토성(沓陽里土城)안내 답양리와 군북면 막지리 장고개의 해발 518m 성지봉에 축성된 퇴뫼형 석축산성으로 둘레가 150m이다.

동서 양 측면에 망루지가 있고 남쪽 면에 150m 할성을 사용한 석성이 흔적이 남아 있다. 답양리산성 하단부에는 동에서 남-서-북진하며 흐르는 금강의 나루와 여울이 있어 나제 격전기인 6~7세기 관산성전투 시기에 중요한 군사교통로로 추정된다. 서쪽 식장산과 환산 방향인 국경선에서 금강을 건너 침입하는 백제군사를 관측·감시와 방어를 역할을 했던 신라 산성으로 추정된다. 동편 망루지에는 산불감시초소와 민묘 1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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