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잃고 고지서도 못 읽는 답답함에 시작
신종예(89) 할머니는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동화책을 읽는다. 잠들기 전 손만 뻗으면 닿는 자리에 동화책 몇 권이 놓여 있다. 신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대동아전쟁 시기를 살아내느라 학교 근처도 가지 못하다가 18세에 시집을 왔다. 아들 둘, 딸 셋 오남매의 어머니로 그는 허리 펼 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 공부는 먼 나라 이야기였고 한 번도 생각을 못해 봤다고. 그러다 신 할머니가 60세 되던 해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할머니는 고지서조차 볼 수 없어 생활에 불편을 느꼈다고.
신 할머니는 “그전에는 남편의 그늘에서 별 불편 없이 지냈는데 혼자 남게 되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고지서가 오는데 무엇인지 몰라 많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신 할머니는 74세에 한글을 배우기 위해 처음 ‘어머니학교’에 갈 때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그러다가 “올해 하다 내년에 죽더라도 해보자 하고 시작한 게 14년을 하게 된 것”이라며 “화요일 금요일 일주일에 2번 학교 가는 날만 기다렸다”고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할머니는 어머니학교에서 14년 장기 출석생 이면서 최고령자다.
어머니학교가 좋은 선물이었다고 말하는 신 할머니는 “송윤섭 교장선생님, 신부자 선생님, 우을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며 어머니학교 교사들 한 사람씩 부를 때마다 얼굴 가득 미소가 가득해졌다. 이어 “청주까지 가서 상도 2번이나 탔다”며 “신종예 장하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1년에 2번씩 가는 봄·가을소풍이 인생에 큰 행복이었다고 회상하는 할머니는 올해 쓰러져 더 이상 어머니 학교에 출석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학교에 못가는 대신 잠 안 오는 저녁 마다 머리맡에 둔 동화책을 펼쳐든다. 동화책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책을 읽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자식들이 “엄마가 학교 다니면서 건강하게 지내셔서 좋다고 열심히 다니라고 격려해 줘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또한 “가방만 메고 나가면 마을차가 있어서 데려다 주니 편하게 다녔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할머니는 “송윤섭 교장선생님이 참 훌륭하다”고 거듭 칭찬하며,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몸이 불편해 더는 가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을 몇 번씩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