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지용제’와 정지용을 찾아 떠나는 기행은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지급되는 특별수당이다.
현대인들은 삶의 일탈을 꿈꾸며 끊임없이 그들의 안식처를 찾아 떠난다. 한편 일상적 삶에 대한 정지용의 고향 의식은 그리움을 안고 애끊는 고향상실로 굵은 방점을 찍는다.
그렇다.
정지용에게 고향은 ‘떠남’의 의식이었고 ‘그리움’의 또 다른 공간이었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정지용의 고향은 ‘신이함’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이러한 신이함은 독자와 작가의 상호작용을 통한 교감의 공간을 형성하게 된다.
정지용의 대표시라 불리는 「향수」에서조차도, 그는 농촌공동체가 가진 그리움과 고향을 떠나온 사람의 고달픔까지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이는 곧 고향 옥천을 향한 마음의 표현이며 그것의 그리움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향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며 더 이상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고향을 대상하고 있다.
이렇게 정지용은 고향을 노래하며 고향을 떠나있었다. 아니 고향을 떠나지 못하여 고향을 애타도록 노래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그는 때로는 고향을 떠나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돌아와서도 고향의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슬퍼하였다.
정지용의 산문 「우통을 벗었구나」에 “진달래꽃이 피어 멀리서 보아도 타는듯 붉었”다는 ‘무스랑이 뒷산이 등장한다. 정지용이 보통학교 시절에 오르고 들렀다는 무스랑이 뒷산. 그 산에 진달래가 피었다.
이 글이 지면을 통하여 독자들을 만날 때면 그 진달래는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이지만 다음해에 또 피어날 것이다. 정지용의 시가 해마다 피어나고 그의 시심을 불러내는 ‘지용제’가 해마다 치러지듯이 말이다.
‘어린이 날’이 다가오고 ‘32회 지용제’도 막이 오르려 한다.
“박달나무 팽이를 갖”고 싶다던 정지용. 그는 어머니를 조르고, 목수 집을 찾아가고, 아버지를 설득해, 팽이를 만든다. 그는 얼음 언 미나리 논에서 박달팽이를 돌린다.
정지용의 「장난감 없이 자란 어른」을 가만히 생각한다. 그러면 “연을 날리기에는 돈이 많이 들어 못 날리”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명치끝을 타고 오른다. 온통 슬픈 이야기이다. 그때는 그랬을 것이라는 자조(自助) 섞인 위로를 해본다.
정지용의 「녯니약이 구절」은 고향을 떠나온 자의 고달픔이 묻어있다. 그 고달픔의 정서가 「향수」보다 더 진하고 직설적으로 배어있다. ‘열네살부터 나가서 고달폇’던 정지용의 고향집은 ‘집 차저 오는 밤’, ‘이 집 문ㅅ고리나, 집웅’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정지용 시인이 실재하는 고향집 바로 그 공간이다.
집 나가 배운 노래를 / 집 차저 오는 밤 / 논ㅅ둑 길에서 불럿노라. // 나가서도 고달피고 / 돌아와 서도 고달폇노라. / 열네살부터 나가서 고달폇노라. // 나가서 어더온 이야기를 / 닭이 울도락, / 아버지 닐으노니 - // 기름ㅅ불은 박이며 듯고, / 어머니는 눈에 눈물을 고이신대로 듯고 / 니치대든 어린 누이 안긴데로 잠들며 듯고 / 우ㅅ방 문섨주에는 그사람이 서서 듯고, // 큰 독 안에 실닌 슬픈 물 가치 / 속살대는 이 시고을 밤은 / 차저 온 동네ㅅ사람들 처럼 도라서서 듯고, // 그러나 이것이 모도 다 / 그 녜전부터 엇던 시연찬은 사람들이 / 닛지 못하고 그대로 간 니야기어니 // 이 집 문ㅅ고리나, 집웅이나, / 늙으신 아버지의 착하듸 착한 수염이나, / 활처럼 휘여다 부친 밤한울이나, // 이것이 모도다 / 그 녜전 부터 전하는 니야기 구절 일러라. //
「녯니약이 구절」 전문, 『신민』 21호(1927.1)
‘32회 지용제’와 정지용의 고향 옥천을 찾아 떠나는 기행.
그것은 정지용의 작품에 심취하는 길이고 그를 사랑하는 길이다. 뿐만 아니라 고향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현대인에게 영원한 의지처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기에 옥천군은 길 잃고 고향 잃어 헤매는 현대인에게 특별수당을 지급하려한다. ‘32회 지용제’를 찾아 떠나는 옥천기행을 통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