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함성, 옥천땅에 울린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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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함성, 옥천땅에 울린 “대한독립 만세~~”
  • 임요준편집국장
  • 승인 2018.03.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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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최초 ‘3·1독립만세운동’ 이원면에서 재현
만세삼창, 연극 공연, 시가행진 등 300명 참여
대부분 아파트 태극기 게양조차 안 해 ‘퇴색’
99년 전 옥천땅을 뒤흔든 ‘독립만세’ 함성이 지난 1일 이원역 앞에서 재현되면서 태극기 물결이 일었다.(사진 왼쪽) 옥천군내 최초 일어난 만세운동을 기념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같은 날 옥천읍 수백 세대가 거주하는 한 아파트에는 3·1절을 기념한 태극기 게양이 가뭄에 콩 나듯 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일방적 위력으로 이뤄진 한일병합조약. 이로 인해 국권은 피탈되고 일제의 탄압은 극에 달했다.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3월 27일 옥천군내에선 이원면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때에 선조들의 애절한 함성이 99년이 흐른 지난 1일 이원면에서 재현됐다.

이원면발전위원회(위원장 박영웅)가 주최한 이날 행사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위원들은 300명이 넘는 참석자들의 점심식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독립 함성이 이날 주민 화합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광경 이였다. 

박 위원장은 “3·1독립만세운동은 독립을 열망하는 우리 선조님들의 전국적 만세운동이다. 이원면 만세운동은 우리 지역의 자랑스런 역사이며 정신”이라며 “이를 계승 발전시켜 애향심을 고취하고자 한다”고 의미를 전했다.

김영만 군수는 “뿌리 없는 나무는 화목에 불과하다. 뿌리가 있어야 자손만대 번창할 수 있다. 3·1독립만세운동은 우리의 뿌리다”며 “수많은 핍박을 이겨낸 선조님들이 계셨기에 오늘 우리가 편하게 지낼 수 있다. 선조님들께 감사한 마음과 함께 겨레와 민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재현행사는 연극 ‘유관순’이 공연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극중 유관순 열사가 옥중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300여 참석자들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함께 외쳐 진정한 독립의 의미를 되새겼다.

1부 행사 이어 시가행진에는 다목적회관에서 시작, 이원역과 면사무소를 거쳐 진행됐다. 이원역에서는 독립유공자 고 육창주 애국열사의 소개와 살풀이공연이 이어졌다. 이원역 현장에서 울린 만세삼창은 그날의 함성 그대로였다.
한편 이날 만세운동 재현과 달리 옥천읍 공동주택(아파트) 대부분은 태극기조차 게양하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기자가 찾은 수백 세대가 거주하는 한 아파트는 태극기 게양이 불과 수십 가구에 지나지 않아 3·1절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었다.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기념일마다 태극기 게양을 당부하는 안내방송을 해도 실제 게양하는 가구는 몇 되지 않는다. 안내방송도 의미가 없어 2년 전부턴 아예 하지 않는다”고 말해 심각성을 드러냈다.

담당공무원의 안일한 행정에도 문제가 있다. 군 담당자는 3·1절 태극기 게양을 독려하는 공문을 각 읍면에 시달했다. 하지만 읍면 담당자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옥천읍 관계자는 “공문을 받고 읍사무소를 방문한 이장님들께 구두로 전달했다. 만나지 못한 이장님들께는 전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태극기 게양은 나라사랑의 시작이다. 옥천군 차원의 적극적 계몽운동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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