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의 정지용詩 다시 읽기(11)
상태바
김영미의 정지용詩 다시 읽기(11)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9.01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 고향 황톳빛 짙은 농촌의 정감을 안겨주는 주옥같은 시로 ‘현대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정지용 시인의 작품을 쉽게 이해하는 공간을 마련한다. 본란은 현대어로 풀어놓은 시와 해설을 겸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매주 게재된다.                              <편집자주>

산엣 색시 들녘 사내

산엣 새는 산으로,
들녘 새는 들로,
산엣 색시 잡으러
산에 가세.

작을 재를 넘어서서,
큰 봉엘 올라서서,

「호-이」
「호-이」

산엣 색시 날래기가
표범 같다.

치달려 달아나는
산엣 색시,
활을 쏘아 잡었습나?

아아니다,
들녘 사내 잡은 손은
차마 못 놓더라.

산엣 색시,
들녘 쌀을 먹였더니
산엣 말을 잊었습데.

들녘 마당에
밤이 들어,

활 활 타오르는 화톳불 너머
넘어다보면-.

들녘 사내 선웃음 소리,
산엣 색시
얼굴 와락 붉었더라.

■ 작품 해설

자연은 문학의 보편적인 소재이다. 한국문학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조화와 합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은 서로 가까이 있는가 하면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 존재 방식은 각각 다르지만 그 밑바탕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이 시는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과 들이라는 자연물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해 남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적화자는 이곳에서 안식을 꿈꾸며 존재의 본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처럼 정지용의 민요시에서 사랑의 관계는 대체로 리듬을 살려 소박하면서도 수줍은 사랑의 감정이 행복한 관계로 나타난다. 이것은 그의 동시가 외로움이 주조를 이룬 것과 대조된다. 산과 들은 ‘우리’라는 공동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자 민족의 정서가 깃들어 있는 공간이다. 또한 서로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는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이 공간에서 ‘산에 사는 색시’와 ‘들녘의 사내’가 사랑의 결실을 맺고자 한다. 즉 인간이 가장 순수하게 뿌리 내리는 생명력의 공간으로 표상되고 있다.

시적화자는 행복한 마음으로 산과 들과 재를 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지의 숨결을 느끼고 그것이 온 천지에 널리 퍼지기를 희망하는 지도 모른다. 산과 들은 오랜 세월 이 땅을 지키고 살다 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지용의 민요시는 개인적 자아보다 우리라는 민족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시적 상상력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원초적 생명과 민족의 순수성에 닿아 있다. 그는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과의 조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 기저에는 인간 자체를 자연의 한 부분으로 보는 관념이 깔려 있다. 이는 자연과의 소통과 합일을 통해서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