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내가 만난 그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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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내가 만난 그분(7)
  • 최종식 청산 성신교회 목사
  • 승인 2018.08.3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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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식 청산 성신교회 목사

아내가 벌어오는 월6만원 가지고는 밀가루 죽 밖에 먹을 것이 없지만 그래도 아내는 아들과 내 학비까지 대주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저는 신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별별 일을 다 했습니다. 아내가 일을 하는 치킨 집에 가서 아내 대신 깍두기 만들어 주고 또 식사 배달도 해주는 등 안팎으로 식모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우리 부부는 교회개척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한끼씩만 먹고 두 끼는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중인데 어느 날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 골수염을 앓고 있는 시어머님을 위해 기도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갔습니다. 그 환자 권사님의 남편은 전에 대법원 판사를 지내신 장로님이셨는데 우리 부부는 권사님을 위해 늘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가정에서 저를 부르기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환자를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를 했고, 약 10분 동안 골수염을 앓고 있는 다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아이 뜨거워 아이 뜨거워” 하면서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권사님은 “다 나았어. 다 나았어” 하고 외치시며 아프던 다리를 툭 툭 때렸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전도사님 병원에서는 내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깨끗이 나았으니 내가 무엇을 해줘야 할까요?” 하면서 자꾸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는 “교회 개척자금” 하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사양하고 있었는데 요즈음 개척교회를 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며느리가 알고는 “어머님 전도사님께서 지금 개척교회를 하기 위해 기도하시는 중이래요.” 하고 옆에서 말을 해주어 저는 속으로 뛸 것 같이 기뻤습니다. 며느리의 말을 들은 권사님은 “참신한 목사님이 나오면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은행에 들어 놓은 적금이 있는데 다음달에 만기가 되니 제가 다 지원하겠습니다,”라 하셨는데 그 돈이 무려 그 당시에 3백만원 돈이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은 날부터 교회를 세울 자리를 알아보고 다녔지만 혼자 다니며 자리를 알아 보는건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했던 제게 당시 책 장사를 하던 ‘원만석’ 이라는 청년이 “목사님 저랑 같이 가시면 좋은 자리 찾으실 수 있습니다.”라며 말을 하기에 둘이 같이 교회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그 당시 제가 들던 가방은 신학교 책도 넣어야 하고 기도원에 갈 때는 세면도구와 옷을 챙겨야 하니 큰 가방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은 제 가방엔 책 두 권이 들어 있었지만 청년이 “목사님 제가 가방을 들겠습니다.”라 말할 때 극구 사양을 하며 제가 들었고 청년은 제 생김새와 행동에 부자인 줄 알고 큰 가방에 돈이 잔뜩 들어있어 넘기지 않는 것이라 알았다고 말했지만 권사님의 지원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을 들은 그 청년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사님이 교회 건물부터 의자, 피아노, 마이크시설, 심지어 찬양대 가운까지 지원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교회를 세운 후 권사님이 교회에 나오시지 않겠다 하시기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 교회는 하나님의 것인데 제가 그 교회에 나가면 주인행세를 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라 말씀하셨고, 첫 예배는 저의 양딸과 친분이 있었던 을지로 6가에 있는 병원 간호사들 4명과 저희 식구까지 총 7명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신학생 신분 때의 책임감보다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얻은 듯 어깨가 무거워지며 이걸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로는 ‘남들이 하는 방식대로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쉽사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힘들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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