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 선생의 혜안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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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 선생의 혜안을 배워야 합니다"
  • 장운철 기자
  • 승인 2025.11.0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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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의사후손문중협의회 조종영 초대회장 인/터/뷰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중봉 조헌 선생(1544-1592)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쳐들어온 일본군을 대항해 싸우자며 깃발을 들었죠. 그러자 선비, 무관, 진사 그리고 노비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여기에 참전했습니다. 목숨 걸고 마지막까지 중봉 선생을 따르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700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들이 금산 전투에서 모두 순직했지요. 그분들의 희생과 충의 정신을 기리고 호국안민의 정신을 함양하자는 게 우리 협의회의 태동 목적입니다.”

조종영 회장(칠백의사후손문중협의회)은 중봉 조헌 선생의 12대 후손이다. 지난 해 중봉 선생에 관해 오해될만한 이야기가 돌았을 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며 “중봉 선생에 대해 올바른 역사와 정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직접 나섰다. 이로 인해 칠백의사후손문중협의회가 지난 9월 23일 금산 칠백의총기념관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조 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추대하며 공식 출범했다. 

“중봉 선생은 한 마디로 경세가(經世家)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파악하는 혜안을 가진 분이었죠. 그는 24세에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임진왜란 5년 전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을 침략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사신을 보내 조선과 통호를 요구했습니다. 중봉 선생은 그것이 일본의 조선 침략 계획임을 발견하고 일본과의 통호를 반대했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왕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도끼를 상소에 올려놓기까지 했습니다. 자신의 말이 틀렸으면 자신을 죽여도 좋다는 뜻을 표출한 것입니다.”

중봉 선생의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봉 선생의 말대로 결국 임진왜란이 발생했다. 중봉 선생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대항하기로 했다. 중봉 선생의 결기를 알고 있는 백성들이 이에 대거 참여했다. 그들도 중봉과 함께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했다.  

“당시 의병 180명의 이름과 48개 성씨와 84개 본관이 있었다는 것을 찾았습니다. 그중 현재 18개 문중이 협의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중 옥천에는 7개 문중이 참여했습니다. 선산 곽씨(곽좌연 회장), 봉화 금씨(금영각 회장), 함양 박씨(박인모 회장), 무송 유씨(유동주 회장), 옥천 전씨(전재영 회장), 하동 정씨(정회장 회장), 배천 조씨(조태호 분회장)입니다. 옥천에 더 많은 문중이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조 회장은 ‘중봉 선생은 개혁가’라고 언급한다. 중봉 선생이 31세 때 명나라 사신을 갔다온 후 <조천일기>를 기록했다. 내용 중 ‘과부를 개가시켜야 한다. 서자를 등용시키자. 노비를 줄여 군대를 양성하자... ’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로서는 말 그대로 개혁의 사상이다. 

“중봉 선생은 과거에 급제했지만 벼슬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않았습니다. 오직 올바른 세상, 백성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중봉 선생의 애국정신을 오늘에 기리자고 하는 것은 단순한 행사 하나를 치르자는 게 결코 아닙니다. 애국한다는 게 무엇인지, 또 올바르게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되돌아보고 우리네 인생에 적용해 보자는 것이지요.”

중봉충렬제가 금년으로 50회를 맞는다. 중봉 조헌 선생과 칠백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옥천에 대표적 문화행사인 지용제 등이 조성되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지켜왔던 일이다. 조 회장은 과거에는 중봉충렬제에서 의병들이 말 타고 왜군과 싸웠던 일들을 재현하는 등의 역사와 문화를 기리는 큰 행사였는데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조 회장은 중봉 선생은 ‘문인’이었음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한시 332수, 평시조 3수 등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우리 교과서에도 실린 ‘지당에 비 뿌리고...’ 등이 유명하다. 

“중봉 선생은 문인이자, 개혁가이며 또 경세가입니다. 물론 의병장이었죠. 참, 왕에게 올린 상소 13편도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비록 49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분의 애국의 정신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종영 회장이 지난 해(2024년)에 '중봉 조헌 의에 살고 의에 죽다'라는 제목으로 중봉 선생의 일대기를 책으로 펴냈다
조종영 회장이 지난 해(2024년)에 '중봉 조헌 의에 살고 의에 죽다'라는 제목으로 중봉 선생의 일대기를 책으로 펴냈다



조 회장은 ‘중봉 조선 선생의 일대기 – 지당에 비 뿌리고’라는 제목으로 본지에 오랫동안 기고를 해왔다. 그 내용을 하나로 묶어 <중봉 조헌, 의에 살고 의에 죽다>(조종영, 문경출판사, 2024)라는 이름의 단행본을 펴냈다. 

 “<임진란 전에는 조헌이요, 임진란 이후에는 이순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봉 조헌 선생을 연구해 온 이들의 한결같은 평가의 목소리죠. 그는 일찍이 일본의 침략을 간파하고 대비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 등 강대국들 틈에 놓여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관세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요. 중봉 조헌 선생의 혜안이 절실히 필요할 때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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