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은 검지 않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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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검지 않다, 깊다
  • 홍용훈 기자
  • 승인 2026.06.18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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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빛으로 한글을 쓰고 사람으로 옥천 문화를 잇는 김승애 작가 인/터/뷰

 

김승애 작가
김승애 작가

 

“사람들은 먹을 검다고 합니다. 저는 검을 흑(黑)이 아니라 현(玄)으로 봅니다”
김승애 작가는 먹빛 이야기를 이 한 글자에서 시작했다. 먹은 물의 양과 운필의 속도, 종이에 머무는 시간에 따라 농담이 달라진다. 진한 먹빛 안에도 밝고 어두운 결이 생기고 비워둔 여백마저 작품이 된다.

“글씨는 문장만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그 문장의 색깔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에게 서예는 글자를 예쁘게 쓰는 일이 아니다. 문장이 품은 뜻과 기운을 붓끝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다. 이때 색을 더하기보다 먹과 물만으로 사물의 정신을 드러낸다. 채색보다 먹의 농담을 반복과 채움보다 여백을 앞세우는 까닭이다. 한 획이 지나간 자리에는 작가가 오래 붙들어온 생각과 태도가 남는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옛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나타내는 겁니다”
그에게 전통은 굳은 형식이 아니라 새로움을 길어 올리는 뿌리다. 필력과 여백을 무겁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은 순간의 감정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옛것을 충분히 익힌 뒤 자기 숨을 얹어야 작품이 오래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서예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됐다. 수업이 끝나면 또래들과 남아 먹을 갈고 붓을 잡았다. 방과후 수업도 아니었다. 옷에 먹물이 튀고 손톱에도 먹물이 뱄다. 그때는 그것이 평생의 길이 될 줄 몰랐다. 좋은 스승들을 만나며 길이 정해졌다. 미술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고 대학원을 거쳐 일본에서 서예 교수학습법을 익혔다. 개인전과 국내외 그룹전을 이어가며 작가로서의 작품 세계를 넓혔다.

“나이가 어리다고 봐주는 사람은 없어요. 가수가 첫 앨범으로 평가받듯 첫 개인전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999년 첫 개인전은 그에게 고비이자 전환점이었다. 그는 2년간 준비했던 작품을 모두 내려놓고 1년을 더 매달렸다. 스승의 기운을 그대로 따라가고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사군자의 선비 정신은 지키되 자신만의 절제 미학을 만들고 싶었다. 다만 스승에게 배운 간결함과 절제, 여백, 선비 정신만은 작업의 뼈대로 남겼다. 지금 돌아봐도 그때만큼 가진 힘을 다 끌어다 쓴 시간은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작품을 만들 때도 고전을 옮겨 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옛 글과 그림을 따라 쓰는 임서와 모사에서 출발하더라도 거기에 자기 뜻을 넣고 한 걸음 나아가 생각을 보탠다. 같은 글자가 거듭 나오는 문장을 일부러 고르기도 한다. 반복되는 글자를 어떻게 달리 쓸지 어떤 리듬을 줄지 장법(글자를 배치하는 방법)을 궁리하는 데서 작가의 역량이 드러난다.

 

김승애 작가 최근 작품
김승애 작가 최근 작품
김승애 작가 최근 작품
김승애 작가 최근 작품


“다독(多讀), 다련(多練), 다작(多作)도 중요하지만, 저를 가장 빨리 키운 건 많이 보는 일이었습니다”
좋은 작품을 보고 현장을 다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만나는 과정이 작가를 키운다는 뜻이다. 많이 보고 배운 것을 나눌 자리로 그가 돌아온 곳이 옥천이다.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무렵 옥천으로 와 군동초와 옥천여중, 옥천여고를 다녔다. 일본 유학과 외부 활동을 거쳐 2002년 옥천으로 돌아와 매원서화실을 열고 주민들을 가르쳤다. 정지용 시비 작업에 참여했고 정지용 시와 지용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을 한글서예로 풀어낸 개인전도 열었다. 2020년에는 정지용 시를 필사하는 달력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한글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한 한글서체변천 특별전에서 훈민정음 판본체부터 궁체와 흘림, 현대적 표현까지 한글의 흐름을 한자리에 펼쳤다.

“문화는 한 사람의 목소리나 한 장르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기억과 손길, 지역 안팎의 이야기가 섞여야 깊어지지 않을까요”
김 작가의 문화론이다. 문화는 작품 하나, 사람 한 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시장이나 큰 무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골목과 학교, 시장, 작은 작업실, 주민이 모이는 자리에서 살아난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노래하고 누군가는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시간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작은 움직임이 쌓일 때 한 지역의 문화는 조금씩 깊어진다.

그래서 그는 지역 작가들이 서로의 작업을 더 자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서예와 문인화, 회화, 사진, 공예, 음악, 문학이 따로 놀지 않고 서로의 작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때 새로운 장면이 생긴다. 혼자 만든 작품도 귀하지만 여럿이 함께 만드는 흐름이 지역 문화의 힘이 된다. 옥천에는 이미 그 흐름을 이룰 만한 이야기와 사람이 있고 밖으로 더 널리 전해질 만한 힘도 있다고 했다. 문화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제자리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정성껏 전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한 옥천 문화가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그는 본다. 옥천의 작가들은 삶의 터전, 기억, 사람들의 마음을 작품으로 남길 수 있다. 그 작품이 밖으로 나가면 옥천의 풍경과 삶도 함께 전해진다. 거꾸로 외부 작가들이 옥천에 와 이곳의 사람과 장소를 작품으로 풀어내면 옥천은 새로운 눈으로 다시 읽힌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흐름이 생길 때 지역 문화는 울타리를 넘는다.

“처음 보는 사람도 뭔지는 몰라도 ‘되게 멋지다’고 느껴야 좋은 작품입니다”
그가 작품에서 바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 닿는 일이다. 어려운 용어를 몰라도 보는 사람이 먼저 느껴야 한다. 옥천 문화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만 아는 문화가 아니라 주민이 가까이서 누리고 함께하는 문화여야 한다. 검은 먹빛 속에 수많은 농담이 숨어 있듯 옥천의 문화도 한 가지 색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작가와 주민, 안팎의 예술가들이 만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여러 빛이 섞여 옥천만의 깊은 빛깔이 된다.

김승애 작가의 먹빛은 종이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획은 배움이 되고 배움은 사람을 잇고 사람은 다시 지역의 문화가 된다. 문화가 사람을 잇고 그 삶을 다시 빛나게 한다고 그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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