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묻는다.
“옥천에서 목공방을 하면 먹고살 만해요?”
그럴 때면 잠시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잘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2020년 호주에서 돌아와 옥천에 자리를 잡았을 때 내게 있었던 것은 거창한 계획도 충분한 자본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이곳에서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막막함이 함께 있었다.
시골에 내려와 목공방을 하겠다고 하니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여기서 누가 목공을 배우러 오겠어?”
“도시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것보다 사람이 적은 곳에서 내가 꼭 필요한 이유를 만드는 것이 더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처음부터 ‘옥천에 있는 목공방’이 아니라 ‘옥천까지 찾아올 만한 목공방’을 만들고 싶었다.
나무를 깎는 기술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숲을 이야기하고 차 한 잔을 나누고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시간을 건네고 싶었다.
그렇게 하나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연결했다.
목공을 배우고 우드카빙을 공부하고 숲을 공부했다. 숲해설가가 되었고 목공체험지도사와 그린우드카빙도 공부했다.
돌아보면 자격증 하나 수업 하나 행사 하나가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모두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면 찾아오게 만들고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면 배우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새로운 일을 만들었다.
그러다 조금씩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옥천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며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고 멀리서 시간을 내어 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도 만났다.
스페인에서 나의 작은 공방을 찾아온 사람이었다.
그날 나는 이상하게도 ‘성공했다’는 생각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 내가 만든 길이 누군가에게는 찾아올 이유가 되었구나.’
처음에는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한 사람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처음부터 잘 닦인 길을 걷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길이 없어서 걷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길이 없기 때문에 직접 길을 만든다.
나는 아직도 그 길을 걷고 있다.
때로는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꼭 남들보다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유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나무를 깎는다.
나무는 한 번에 원하는 모양이 되지 않는다.
조금 깎고 다시 살펴보고 또 깎는다.
너무 많이 깎으면 되돌릴 수 없고 조금 덜 깎았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다.
삶도 아마 그런 것 같다.
완벽한 계획을 세워놓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조금씩 나에게 맞는 모양을 찾아가는 것.
나는 지금도 옥천에서 나의 모양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
“나도 저 사람처럼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만든 작은 길 하나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
아마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유도 결국 그것인지 모른다.
내가 만든 길이 나 하나만을 위한 길이 아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