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불교”…범어까지 한글 표기한 책이 옥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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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불교”…범어까지 한글 표기한 책이 옥천에
  • 임요준기자
  • 승인 2019.10.10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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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가산박물관 박희구 관장
조선 후기 편찬 ‘일용작법’ 소장
한글 첫 공부 반절표 내용 실어
‘가나다’ 행순 ‘카타’ 아닌 ‘타카’
끝에 ‘과 궈’행 둬 지금과 달라
박 관장 “한글연구 귀
(140년 만에 깨어난 한글)옥천 가산박물관(관장 박희구)에서 소장하고 있는 승가에서의 일용작법(日用作法)이 14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일용작법은 승려들이 밥 먹는 것부터 목욕하는 것, 삭발 하는 방법까지 모든 일상의 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경문도 함께 실었다. 무엇보다 한문으로 씌어진 어려운 내용과 범어까지도 한글로 토를 달아 한문과 범어를 알지 못해도 읽을 수 있게 했다. 승려가 불경을 배우는 데 한문과 범어를 몰라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게다가 책 시작은 한글의 반절표로 시작하고 있다. 한글을 먼저 배우라는 세심한 뜻이 담겨져 있다. 573돌을 맞이한 한글날. 한글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용작법을 만나러 가산박물관을 찾으면 어떨는지?

민가조차 드문 안내면 가산천 상류지역 우거진 숲속에 오래된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허름한 건물과 달리 문화재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가산박물관(관장 박희구)이 소장한 서적만도 1만점에 이른다. 그중 조선 후기 한글 쓰임의 중요한 연구자료 이면서 승가에서의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서적 한권이 있다. ‘일용작법(日用作法)’이 그것이다.

옥천향수신문은 573돌을 맞이한 ‘한글날’을 기념해 기획특집 ‘일용작법’을 들어다 본다. 조선 후기 한글의 쓰임과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주는 교훈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일용작법은 승가일용시묵언작법(僧家日用時默言作法)이나 승가일용식시묵언작법(僧家日用食時默言作法)이라고도 한다. 1666년 판각해서 1882년 편찬했다. 1책 88장으로 구성돼 있다. 설악산 신흥사 영서가 판각하고 정행이 편찬했다. 규장각 도서, 동국대학교 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도 소장하고 있다. 가산박물관이 소장한 ‘일용작법’은 1882년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서 편찬한 것이다. 

이 책은 당시 민간에서 한글을 처음 배울 때에 사용하는 본문(本文), 곧 반절표를 실었다. 그것은 당시 민간의 본문을 알려주는 점에서 주목된다.

언본에 초성, 중성, 종성, 통용 8자라고 기록돼 있다. 자모의 이름에서 ‘ㄹ梨乙, ㅅ時衣’를 ‘而乙, 示衣’로 한 점과 ‘을’ 잘못 알고서 ㅣ와 ㅇ으로 분석하여 ‘ㅣ而ㅇ行’으로 한 점, ‘가나다’의 행순(行順)에서 현행의 ‘카타’가 ‘타카’로 된 점, 그리고 끝에 ‘과 궈’행을 둔 점 등이 특이하다.

책 내용으로는 사찰 대중이 묵언(默言)으로 바루공양(사찰에서 승려가 식사할 때 규범과 법식에 따라 행하는 전통적인 불교의례. 즉 식사의례)을 할 때 묵언작법과 식당작법(食堂作法)의 절차를 싣고 있다.

묵언작법은 밥그릇인 바루를 내리는 하발게(下鉢偈), 바루를 대중 일동이 돌리는 회발게(回鉢偈), 또 각자가 바루를 펴는 전발게(展鉢偈), 그리고 십념(十念), 이어서 식사를 하라는 뜻으로 창식게(唱食偈), 식사를 하게 되는 수식게(受食偈)를 담았다. 이어서 불삼신진언(佛三身眞言)·법삼장진언(法三藏眞言)·승삼승진언(僧三僧眞言)·계장진언(戒藏眞言)·정결도진언(定決道眞言)·혜철수진언(慧徹修眞言) 등 6대진언의 절차가 있다.

이어 봉발게(奉鉢偈)·오관게(五觀偈)·생반게(生飯偈)·정식게(淨食偈)·삼시게(三匙偈)·절수게(絶水偈)·해탈주(解脫呪)·수발게(收鉢偈) 등의 순서를 싣고 있다. 이 묵언작법은 식사에 대한 불교적 의미를 부여한 신앙의례로서, 절간에서 식사 때 언제나 행하는 상용의례이다.

묵언작법이 바루공양 때에 언제나 행하는 상용의례인 데 반해 식당작법은 식사 그 자체의 의미를 의식화한 불교의식을 말한다. 이 식당작법은 영산재(靈山齋 불교의 영혼 천도 의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재)가 끝난 뒤에 행하며, 대중공양의 의미를 의식화한 것이다.

이 책은 식당작법에 소요되는 제반 절차를 적고 있다. 의식의 절차는 물론이고, 의식을 맡은 승려의 배역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묵언작법과 식당작법은 불교에 있어 식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박희구 관장은 “일용작법은 승려가 일상생활에서 행할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 밥 먹는 방법과 머리 깎는 법, 목욕법, 부적까지 나와 있다”며 “각 한문에는 한글로 토를 달아 한문을 모르는 자도 한글만 알면 불경을 암송할 수 있다. 죄를 씻을 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러주고 있다”고 멸죄진언, 세제장진언, 보참좌장다라니 등을 설명했다.

특히 이 책은 범어(산스크리트어, 고대 인도 아리안 말) 읽는 것을 한글로 토를 달았다. 범어는 불교와 함께 유입돼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주요한 언어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범어를 적기 위해 사용된 범자는 훈민정음의 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멀리 인도로부터 기원해 동북아시아의 끝자락 한반도에 이르는 문화 전파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점에서 민족사적, 인류사적 의의를 지닌다.

일용작법에는 이러한 범어와 한문과 한글이 함께 씌어진 귀중한 서적이다.

박 관장은 “불자에게 성지순례는 평생에 걸쳐 꼭 해보고 싶은 소망이다. 그러기 위해선 범어를 꼭 알아야 했고 일용작법에는 이런 범어를 읽는 방법을 한글로 토를 달아 소개하고 있다”고 의미를 전했다.

그러면서 한글날을 맞이해 “소장한 자료들은 앞으로 문화재 지정 추진을 지속적으로 펼쳐 갈 것”이라며 옥천군민의 관심을 당부했다.

가산박물관

주소:옥천군 안내면 용촌리 221
연락처:043-733-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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